Moon Young Lee

월간
 
최소주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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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공직 배제 5대 원칙을 내세웠다. 대통령 후보로 나설 때부터 병역회피, 부동산투기, 탈세, 위장전입, 논문표절에 연루된 사람을 고위 공직에 임명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낙연, 강경화, 김상조, 김상곤 등이 위장전입이나 논문표절로 곤욕을 치렀다. 고위공직 배제 5대 원칙이 “자승자박”이 되어 새 정부를 옥죄고 있다(문현구 2017). 수구 기득권 세력은 공직배제 5대 원칙을 스스로 어겼다며 문재인 정부를 공격했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거나 참여정부 시절의 ‘코드인사’라며 비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인사참사 정부인가?

과연 문재인 정부가 치솟은 지지율만 믿고 엉터리 공직후보자를 남발했을까?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국무총리와 장관급 고위공직자 후보자들의 성적을 정권 별로 살펴보자.

후보자가 낙마를 했거나, 청문회 보고서 없이 임명되었거나, 부적격 의견임에도 임명된 비율은 참여정부가 16%로 가장 낮았고 이명박근혜 정부가 각각 53.1%와 51.5%로 크게 높았다(박경원 2017). 문재인 정부는 7월 4일 기준으로 33.3%였다. 낙마 비율만 봐도 참여정부는 3.7% (=3/81)였고, 이명박근혜 정부는 각각 8.8% (=10/113)와 10.1% (=10/99)였고, 새정부에서는 지금까지 안경환 후보자가 낙마를 하여 6.7% (=1/15)였다. 청문회 보고서 없이 혹은 부적격 의견임에도 임명을 강행한 비율은 참여정부가 12.3%, 이명박근혜 정부가 44.2%와 41.4%였다. 문재인 정부는 26.7%였다. 결국 인사참사가 있다면 노무현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아직도 노무현 정부의 ‘코드인사’와 ‘회전문인사’를 떠올린다. 이명박 정권의 ‘회전문 인사’와 박근혜 정권의 ‘수첩인사’와 ‘밀봉인사’는 벌써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진 듯하다.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절반이 넘는 후보자가 논란거리가 되었음에도 어찌하여 비난은 참여정부가 받는 것일까? 어찌하여 이명박근혜 정부가 ‘코드인사’했다며 비판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일까? ‘코드’로 치면 김용준, 문창극, 이완구, 황교안, 김진태, 이경재 같은 기라성綺羅星들이 즐비하지 않은가?

마법에 걸린 나라?

조기숙(2007)은 이런 황당한 현상을 조선, 동아, 문화 일보(조중동이라기보다는 조동문)로 상징되는 기득권 세력의 주술로 설명했다. 조동문이 참여정부를 저주하는 주술을 만들면 보수와 진보 오피니언 리더들이 다른 언론에그 주술을 읊어 대고, 급기야는 진보언론(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과 여당(열린우리당)까지 합세했다(40-42쪽). 일반 시민들은 이런 마법에 홀려 사실과 진실을 깨닫지 못했다. 참여정부는 담론 혹은 프레임 경쟁에서 무기력하게 패했고, 부당하게 그리고 박하게 평가받았고, 철저하게 왕따를 당했고, 무방비 상태로 얻어터지고 짓밟혔다.

고위공직 배제 5대 원칙이 불편한 이유

고위공직자를 임명하는데 5대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사실 상식에 가깝다. 물론 어떤 사람은 다른 원칙(예컨대, 성범죄자 배제)을 선호할 수도 있다. 조세와 공납과 역은 옛부터 내려온 나라의 기본이니 납세, 병역, 재산형성이 떳떳하지 못한 자를 공직에 배제하는 것은 합당하다. 다만 주민등록법 37조에 근거한 ‘위장전입’ 여부만으로 공직자의 자질을 판단하거나 표절여부를 가리기가 어려운 일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지나치다. 차라리 투기와 탈세 문제를 더 자세히 들여다 보거나 (그런 목적으로 주민등록을 신고했는지) 패륜범죄를 저질렀는지를 따지는 것이 더 합당해 보인다.

공직배제 원칙이 불편해 보이는 이유는 그 내용이 부적절해서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수구 정권과 차별화되는 선명성을 부각하려다 무리수를 둔 것이다.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인사참사’에 분노하고 좌절했던 시민들을 달래주고 그 눈높이에 맞춰줘야 한다는 강박이 지나쳤기 때문이다. 그들과는 무조건 달라야 한다는 지나친 강박이 무리수로 이어진 것은 아닌지. 말하자면 표현할 자유를 억압하는 법규정에 눌려 지내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자기검열’을 하고 더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어리석음이다. 참여정부에서 과반인 152석을 얻은 열린우리당이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한번도 그런 힘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무기력했던 것처럼 지지율이 8할인 문재인 정부도 그 힘을 실감하지 못하고 얼떨떨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만큼 수구 기득권 세력의 힘이 세다는 뜻이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판을 깨기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직배제 원칙은 상식에 가까운 문제 (조세, 재산형성, 병역, 패륜범죄 등)에 치중했어야 했다. 쓸데없는 논란거리가 되는 일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주 심각한 수준부터 시작하고 점차 폭을 넓혔어야 한다. 과거 10여 년 동안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살아남은 자들 중에서 고위 공직자를 찾아야 한다면 배제 대상의 폭과 수준을 적절하게 조정했어야 했다(야당의 비난을 받은 이후에 이를 깨달았음이 아쉽다). 물론 공직자들 중에 원칙에 꼭 맞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문재인 정부의 고위 공직 배제 5대 원칙은 소정 선생님의 표현에 따르면 ‘과격’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나치게 방어와 수세에 촛점을 두다가 제 발에 걸려 넘어진 뒤 수구 기득권 세력의 반격을 받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열린우리당의 어리석음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촛불민심으로 만들어 준 정권임을 되새겨 책임감을 가지고 국민을 바라보고, 자신감을 가지고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 민심을 믿고 당당하게 나아가야 한다.

참고문헌

  1. 문현구. 2017. ‘화려한 출발’ 문재인 정부, ‘5대 비리 공직 배제 공약’에 자승자박. <데일리안>. 5월 7일.
  2. 박경원. 2017. 인사청문대해부 1: 논란인사 비율,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노무현 정부 순으로 높았다. <SBS News>. 6월 28일.
  3. 조기숙. 2007. <마법에 걸린 나라>. 서울: 지식공작소.

인용하기: 박헌명. 2017. 고위공직 배제 5대 원칙이 불편한 이유. <최소주의행정학> 2(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