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Young Lee

월간
 
최소주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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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노벨 박물관에 다녀왔다며 누군가가 내게 Elinor Ostrom (1951-2012) 사진을 선물했다.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고 3년 뒤에 세상을 떠난 인디애나대학교의 정치경제학자다. 짧은 인연을 생각하며 바라본 사진 속 린(엘리노어의 애칭)은 너무 근엄해 보였다. 정말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했다. 자상하고 활기찬 모습 뒤에 엄격함과 날카로움이 숨겨져 있음을 안다. 그래도 인간미 넘치는 모습으로 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린의 동반자였던 Vincent Alfred Ostrom (1919-2012)도 비슷한 양면성을 가진 분이다.

빈센트와 소정 선생님

언젠가 안도경 교수가 빈센트와 소정 선생님(1927-2014)께서 많이 닮았다는 얘기를 했다. 수년 간 린과 빈센트와 지냈고 고대 행정학과에서 가르쳤던 TK(안교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었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딱 맞는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 모두 키가 큰 편이다. 한덩치를 하고 서 있는 모습이 비슷하다. 특히 멜빵바지를 입은 모습과 어눌하게 말씀하시는 말법이 몹시도 닮았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두 분의 닮은 꼴은 생김새보다는 생각과 행동에 있다. 소정 선생님께서 자신을 청교도로 규정했는데, 빈센트 역시 청교도 모습이었다. 한없이 인자한 반면에 상식과 원칙에는 타협하지 않았던 모습을 기억한다.

처음 오스트롬 Workshop에 갔을 때 나는 긴장을 했다. 가정집을 개조한 곳이어서 더 낯설게 보였다. 옆자리에 지팡이를 든 어느 노신사가 앉았는데, 내게 어디서 왔는지 묻고는 워크숍 생활에 대해 친근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것 저것 알려주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 노신사가 그때 이미 팔순인 빈센트였음을 나중에 알았다.

빈센트는 미국이 알래스카를 얻은 뒤 주헌법제정의회(Alaska Constitutional Convention)에게 자연자원 관리에 관한 자문을 해준 분이다. 관개灌漑와 어로漁撈 같은 공유자원(common-pool resources) 문제를 어떻게 잘 관리할 수 있는가를 연구하셨다. 이와 관련하여 빈센트가 종종 polycentricity (일을 해나가는 주체가 여럿이어서 서로 협력하고 조정해나가는 경우)와 미국의 연방제(federalism)를 확신있게 말할 때 나는 그냥 민주주의 이론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었다. 빈센트가 정부가 시민단체에 돈을 줘서 무엇을 하려는 것을 비판할 때도 나는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우연히 빈센트의 행동을 목격하면서 나는 벼락을 맞는 깨달음을 얻었다.

빈센트의 성내기

어느 여름날 나는 Kroger라는 대형 식료품점에 갔다. 필요한 물건을 담아서 계산대 앞에서 줄을 섰다. 내 차례가 다가오길래 바구니에서 물건을 꺼내 계산대에 올려놓고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금새 소란스러워졌다. 허리를 펴고 무슨 일인가 봤더니 계산대 앞에 선 노 신사가 지팡이로 저쪽을 가리키며 고함을 치고 있었고, 점원으로 보이는 젊은 흑인이 뒷걸음질 치더니 몸을 돌려 내빼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노신사가 빈센트였다. 불편한 몸으로 어떻게 손수 장을 보러 나오셨을까...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 사태를 수습하려고 애쓰고 있었고, 빈센트는 어떻게 저런 자를 점원으로 고용하느냐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빈센트의 노여움이 하도 서릿발같아 나는 차마 나서지 못했다.

빈센트 다음으로 (그러니까 바로 내 앞에) 서 있었던 아주머니에게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 점원이 껄렁껄렁한 표정과 몸짓으로 빈센트가 담아온 물건을 성의없이 끄잡아서 스캐너로 읽었고, 바구니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마음이 상한 빈센트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지적을 했지만 점원은 비웃으면서 계속 오만불손한 행동을 계속했고, 결국 빈센트가 폭발했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그 점원이 뒷걸음치면서 지었던 비열한 웃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는 공짜가 아니다

“이런 것이었나…”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이렇게 탄식했다. 민주주의란 것이 공짜가 아니구나. 거창하게 혁명, 선거, 시위 등에서 민주주의를 찾을 것이 아니다. 정치행사가 아닌 일상 생활에 잘 녹아든 민주주의여야 한다. 정치인과 법조인이 아니라 일반 유권자의 수준이 민주주의 시금석試金石이다. 시민 개개인이 자연인으로서 누리는 기본 권리와 그 가치를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기본권이 침해당했을 때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하고 치열하게 다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일반 시민의 이해와 용기와 행동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빈센트는 고객으로서 받아야 할 정당한 대우는 커녕 인간으로서 기본 권리마저 무시당한 것에 대해 단호하게 부당하다고 말하고 시정할 것을 강하게 요구한 것이다. 소정 선생님이 묘사한 청교도 모습이다. 그제서야 정부가 시민단체에 돈을 주는 것을 왜 빈센트가 싫어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주권자의 정직한 뜻과 피와 땀이 필요할 뿐이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노무현씨의 말을 다시금 떠올리는 까닭이다.

시민단체는 자발성과 자율성을 그 생명으로 한다. 정부가 효율성을 높이고 사회자본(social capital)을 늘린답시고 민간부문을 함부로 건드리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열매를 따먹는 것과 같다. 지난 9년 동안 신문 방송을 장악하고, 국가기관이 나서서 여론을 조작하고 비판세력을 탄압한 것도 마찬가지다. 나랏돈으로 사회단체를 매수하여 여론을 호도하고 정적을 공격하게 했음이 드러났다. 자발성과 자율성이 망가진 이들에게서 소정(1980)이 말한 관官의 폭력을 견제하는 합리적 요구와 건전한 압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서 세월호에서 죽어간 수백 명의 인권과 9년간 짓밟힌 주권자의 자존심과 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깨어있는 시민의 사려깊은 이해와 참된 용기와 질서있는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촛불 집회가 소중한 까닭이다. 나는 그 때 수많은 빈센트가 성내는 것을 보았다.

인용하기: 박헌명. 2017. 팔순 노신사의 성내기와 민주주의 <최소주의행정학> 2(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