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Young Lee

월간
 
최소주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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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2014년 제정된 <서울특별시 국어사용조례>에 따라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를 꾸려 행정용어 145개를 쉬운 우리말로 고쳤는데, 그 중에는 최근 고시된 성별, 장애 등 차별에 관련된 용어 13개가 포함되었다고 한다(연합뉴스, 2018.4.16). 예컨대, “정상인”은 “비장애인”으로, “조선족”은 “중국동포”로 쓰라고 권고했다. 아직도 많은 법률과 행정 용어와 표현이 한글의 말법과 글법과 거리가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일본말 찌끄러기가 널부러져 있고 쓸데없이 영어 단어를 섞어쓰고 있는 현실에서 그 취지와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억지로 균형을 맞추려거나 일상의 말습관에 맞지 않는 것도 있기 때문에 마음이 마냥 편한 것은 아니다.

학부형? 처녀작? 레이싱걸?

예컨대, “학부형學父兄”은 학생의 아버지와 형이어서 여성이 빠져있다. 그래서 “학부모學父母”로 쓰라는 것이다. 이미 학부모는 널리 사용되고 있으니 큰 문제는 없으나 여성이 빠져 있으니 학부형은 안된다는 발상 자체가 불편하다. 이런 식이면 형, 누나, 숙부, 숙모 등은 죽었다 깨나도 학생의 보호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인가? 단어에 여성이 들어있으면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말습관을 성차별로 찍어누르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말이다. 말이 학부형이지 어머니나 누나가 학교에 찾아가는데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여성이 학부형으로 인정받지 못해서 바꾼다면야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일이라 하겠지만…

또 “편부偏父”나 “편모偏母”는 남자나 여자를 지칭하기 때문에 한쪽을 편들지 않는 “한부모”로 하겠다고 한다. 편부나 편모라고 것이 특정한 상황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남녀를 차별하는 말이라고 인식한 듯하다. 하지만 우리의 말습관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 “한마을”이 “같은 마을”이라는 뜻인 것처럼 “한부모”는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뜻이다. 부모 중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뜻으로 “한부모”를 운운하는 것은 엉터리 조어법이다. 마치 “먹을 거리”가 아니라 “먹거리”로 어법을 파괴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과 같다(그러면 “볶을 거리”가 아니라 “볶거리”요 “씹을 거리”가 아니라 “씹거리”란 말인가?). 게다가 “홀아버지”와 “홀어머니”라는 우리말이 있는데, 웬 편부와 편모 타령인가? 굳이 단어를 만들자면 그냥 “홀부모”라고 하면 될 일이다.

2006년 한국여성개발원에서 성차별하는 단어라며 예시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였다(이유진, 한겨레신문, 2006. 11.9). 대개는 여성입장에서 못마땅하게 생각할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말습관을 무시하고 단어의 사전 의미에 집착한 결과 많은 비난을 받았다. 예컨대, “처녀작”이라 하면서 왜 “총각작”이라고는 안하는가? 그럼 “총각김치”에 대항하여 “처녀김치”도 만들어야 하나? “처녀귀신”에 더하여 “총각귀신”은 어떠한가? 왜 “스포츠우먼”이라고 하지 않고 “스포츠맨”이라고 하는가? 친가, 외가, 친정, 시댁 등에 시비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차이와 차별을 혼동하고 있다. “여자도 남자처럼 서서 일을 보고, 수영복도 한 조각만 입고, 군대가게 해주세요”라는 우스개소리로 들린다.

“레이싱걸”은 한 술 더뜬다. 짧은 옷을 입고 멋있는 차 옆에 서 있는 여성은 분명 소녀가 아닌데 왜 girl이라고 부르냐면서 “경주도우미”라고 하랜다. 그럼 팔순 할머니도 자신을 걸이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 서구 문화는 어쩌란 말인가. 또 환갑이 넘어서도 스스로를 청춘이라고 말하는 자들을 치매환자로 몰아야 하나? 그래도 girl이 소녀라는 뜻임을 돌돌돌 외고 있는 것만 해도 기특하다고 칭찬을 해줘야 하나… “경주도우미”라니... 스스로 앉고 움직이는데도 불편해하는 여성이 자동차 경주를 어떻게 돕는다고 도움이란 말인가. 발음을 해도 입에 잘 붙지도 않는다. 뜻으로 치면 차라리 “차들러리”가 더 낫지 않을까?

미망인, 과부, “故 OOO의 부인”

서울시와 한국여성개발원은 공통으로 “미망인” 대신에 “故OOO의 부인”을 사용하라고 권하고 있다. 미망인未亡人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나온 말인데, 사전 의미는 “남편을 따라 죽어야 하는데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이다. 따라서 양성평등에 맞지 않기 때문에 “故 OOO의 부인”이라고 쓰라는 것이다. 한국여성개발원은 또한 과부寡婦와 홀아비가 원래의 뜻이 바뀌어 비하하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사용하지 말라고 권했다. 나는 이런 권고가 못마땅하다. 멀쩡한 어휘를 삐딱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문제지 대체 과부와 홀아비가 무슨 죄란 말인가?

<춘추좌씨전> 노장공魯莊公 28년에 따르면 초나라 文王이 죽은 후 동생인 자원子元이 형수인 식규息嬀를 유혹하기 위해 만무萬舞를 추자 문부인文夫人이 선왕(남편)은 그 춤으로 원수를 토벌하는 연습을 했는데, 지금 영륜令尹이 된 子元(시동생)은 그 춤을 연습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미망인(자신) 옆에서 추고 있다며 수상하게 여겼다(今令尹不尋諸仇讎 而於未亡人之側 不亦異乎). 부주附注에는 부인이 과부가 되면 스스로 미망인이라 칭한다(婦人旣寡 自稱未亡人)고 적혀 있다. 애초에 남편을 잃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 과부이며, 남이 아니라 과부 스스로가 오랜 관습에 빗대어 겸손하게 미망인이라고 칭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한편 <孟子集註> 梁惠王章句의 集註는 “과인寡人은 제후가 스스로 칭하는 것인데, 덕이 적은 사람(寡人諸侯自稱 言寡德之人也)을 말한다”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보면 과부는 寡德之婦로서 “덕이 부족해서 남편을 먼저 보낸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말 그대로 겸양이고 점잖은 표현이며 남녀 차별과는 관계가 없다. 미망인과 마찬가지로 제후가 스스로를 과인이라 칭하는 것이지 남이 제후를 과인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하가 왕을 寡人이라 불렀다가는 당장 불경죄로 끌려가서 볼기를 맞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寡婦는 고상한 뜻임에도 불구하고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나쁜 선입견을 주는 천박한 말이 되었다. 정말로 덕이 부족해서 남편을 잡아먹은 여자로 해석해서였을까? 말의 참뜻과 맥락을 깨닫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면 남편을 잃고 “다 내 책임이다. 내 죄다. 내가 죽어야지”라며 울부짖는 寡德之婦를 살인죄로 다스려 순장殉葬시켜야 하나? 또 우리는 “순직한 OOO씨의 미망인”같은 표현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애초부터 未亡人은 스스로를 낮추어 이르는 말이지, 타인이 당사자를 부르는 말이 아니다. 전우를 잃고 홀로 살아 돌아와 “나만 혼자 죽지 못하고 돌아왔다”며 자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을 만큼 슬픈데도 죽지 못하고 있는 심정”을 담은 말이다. 그런데 점잖게 예의를 차린다면서 어떻게 대놓고 “남편이 죽었는데도 아직까지 따라죽지 않다니... 얼른 죽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멱살을 잡히거나 귀싸대기 맞을 일이다. 이는 어법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여성을 차별하는 부적절한 표현이다. 좋은 약도 맞게 쓰지 않으면 독이 되는 것처럼 고운 말도 잘못쓰면 흉기가 된다.

마치 자기가 쓴 책을 남에게 주면서 상대방의 이름 뒤에 혜존惠存이라고 적어 “잘 간직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원래는 책을 받은 사람이 “귀한 책을 주신 것이 참으로 은혜로우니 잘 보존하겠습니다”라는 뜻으로 책을 준 사람 이름 뒤에 적는 것인데, 일제시대를 지나면서 일본식 혜존이 정착되었다고 한다(이윤옥 2010). 김봉규라는 웹마실꾼의 의견이라고 한다. 책을 받은 사람 스스로가 그 고마움을 새겨서 잘 간수하겠다는 뜻으로 惠存이라고 적는 것이 아니라, 책을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에게 잘 보존하라고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색하고 부적절한가. 얼마나 명문장이길래, 얼마나 비싼 책이길래, 얼마나 권세가 높길래 책을 주면서 잘 간수하라고 이른단 말인가? 품위와 겸손과 거리가 먼 말이다. 과부 스스로가 미망인으로 칭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미망인으로 부르는 것은 惠存을 잘못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본말을 뒤바꾸는 일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도올의 목욕탕 민원해결

한국여성개발원과 서울시에서 권고하고 있는 “故 OOO의 부인”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왜 하필 “故”를 붙여야 할까? 한국여성개발원에서는 “돌아가신 분의 부인” 등으로 풀어써야 한다고 설명했다(이유진, 한겨레신문, 2006. 11.9). 남편을 먼저 보낸 것도 슬픈 일일 터인데, 왜 남편이 죽었다는 것을 “확인사살”하여 아픈 곳을 헤집어 놓는가? 당사자의 남편이 고인이 된 것은 다 아는 사실일 텐데, 굳이 죽은 남편 이름이 누구라고 매번 각인시키는 까닭은 무엇일까? 여자는 일부종사一夫從事를 해야 하니 어느 한 순간도 개가할 생각을 품지 말라는 뜻일까? 이것이 한국여성개발원과 서울시가 추구하는 양성평등인가?

수년 전 도올 김용옥 선생님이 어느 방송에서 동네 목욕탕에 갔을 때 벌어진 일화를 소개했다. 누군가가 선생님을 알아 보고는 벌거벗은 채로 고민거리를 털어놨다. 결혼을 앞둔 신부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청첩장에 “故 OOO씨의 장녀△△△”로 해야 할지 또 청첩인을 누구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도올 선생님의 답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가슴아픈 일인데 뭐하러 청첩장에 죽었다고 쓰냐면서 아버지의 딸인 것은 맞으니 그냥 “OOO씨의 장녀△△△”로 쓰고 청첩인은 살아있는 사람(어머니나 친척) 이름을 쓰면 된다고 했다.

“故 OOO의 부인”도 마찬가지 경우다. 뭐하러 당사자를 부를 때마다 남편이 죽었다고 각인을 시키는가? 주인인 남편이 죽었으니 초나라의 子元이처럼 춤이라도 춰서 어떻게 해보겠다는 속셈인가? 아님 남편이 살아있는 사람과 차별을 하여 깔보고 업신여기겠다는 심산인가? 이런 점에서 “故 OOO의 부인”은 매우 부적절하다. 그러면 “OOO의 부인”이면 괜찮을까?

남편이 이미 세상에 없는데 뭐하러 남편 이름을 들먹거리는가? 그렇게 양성평등을 외치면서 “OOO의 부인”이라고 관계를 적으라고 권유하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인가? 법이나 업무상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전혀 쓸데없는 짓이다. 더구나 여기서 부인은 婦人(결혼한 여자)이 아니라 夫人(아내)이다. 문자 그대로 풀어보면 “남자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남편은 男便이지 “여자의 남자”가 아니다. 레이싱걸에 소녀는 없으니 girl을 써서는 안된다고 강변하는 사람들이 “女便”을 사용하라고 하지 않고(“女便네”는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라고 싫어하면서) 아무개 남자의 여자라고 적으라고 권고하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요컨대, 미망인이 문제가 아니라 남편을 잃고 슬픔에 빠진 당사자를 맨정신으로 미망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잘못이다. 과덕지부라는 좋은 뜻을 망각하고 寡婦라고 색안경을 끼고 삐딱하게 보는 자들이 잘못이다. 과부나 미망인이나 모두 무죄다. 생각컨대 그냥 ◇◇◇씨나 ◇◇◇여사로 부르면 족하다. 필요하다면 설명을 붙이면 될 일이다. 또한 말의 참뜻을 이해하면 寡德之夫(지어미를 잃은 남편), 寡婦(지아비를 잃은 아내), 寡人(짝을 잃은 사람)이라 해도 괜찮을 것같다. 그동안 부당하게 과부를 천대하고 미망인을 오용한 잘못을 반성해야 한다.

말법과 글법을 살펴 신중하게

나는 한글을 아름답게 다듬고 풍성하게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먹거리”나 “안습”같은 말장난이나 언어파괴질은 바로잡아야 한다. 또한 일본어의 잔재를 청산해야 하며, 외국어를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일도 자제되어야 한다. 물론 각종 차별을 상징하거나 조장하는 어휘와 말법을 시대에 맞게 적절하게 바꾸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여성개발원과 서울시의 취지와 의도에 의심을 품지 않는다.

하지만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의욕이 지나쳐 일을 그르쳐서는 안된다. 언제나 불완전할 수 밖에 없는 언어에 갖혀서는 안된다. 무조건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강박에 쫓겨 또다른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된다. 차이와 차별을 구분해야 한다. 문자가 아닌 표현의 전후맥락을 살펴야 한다. 말법과 급법과 관행과 그 변화과정을 잘 살펴서 과격하지 않게 일을 추진해야 한다. 어차피 일상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제안된 말법과 글법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특별히 여성차별에 관련된 어휘는 차분하게 연구하고 토론하여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정부관료제에서 사용되는 단어, 문장, 양식에서 일본어 잔재를 하루 빨리 걷어내야 한다. 해방 후 반민족행위처벌법과 특별위원회가 이승만 독재정권에 의해 좌절되면서 친일파와 일제 유산이 청산되지 못하고 오히려 관료제를 지배하였다. 일본식 한자를 한글로 읽거나 토씨만 갖다 붙인 수준이었다. 일본의 법률문장이나 서류양식을 거의 그대로 베껴왔다. “대통령”과 “헌법” 뿐만 아니라 “회람”(돌려보기), “시말서”(경위서) 등이 우리 일상에 넘쳐나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다.

마지막으로 옥스포드 영어사전 같이 제대로 된 한글사전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사전은 그 언어의 수준과 힘을 재는 척도라고 생각한다. 현재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뜻풀이도 그러하고 용례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우리말 사전의 종류가 시계가 멈춘 듯 제한되어 있다. 서점에 가서 외국어사전과 한글 사전을 비교해 보라. 한글이 우수하다는 자랑이 무색할 지경이다. 이제 단순히 일본어 사전을 베낀 사전이 아니라 우리말의 느낌과 표현(광범한 용례를 포함한)을 충분히 담은 사전이 필요하다. 순한글, 관련어(thesaurus), 방언, 속담, 관용어 등에 관한 다양한 사전이 절실하다. 이오덕(2009)의 <우리글 바로쓰기>(서울:한길사)와 이한섭(2014)의 <일본에서 온 우리말 사전>(서울: 고려대학교 출판부)과 같은 역작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정부와 연구기관과 연구자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참고문헌

인용하기: 박헌명. 2018. 미망인? 과부? ”故 OOO의 부인”?. <최소주의행정학> 3(4): 3-4.

2019. 02. 12 마지막 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