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Young Lee

월간
 
최소주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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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0일부터 약 사흘 간 일본 미애三重현 이세伊勢시에 위치한 신궁을 구경했다. 일본을 지켜준다는 천조대어신天照大御神(Amaterasu-Omikami)을 모신 곳으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신도神道의 성지다. 기원 전에 바쳐졌다는 이곳은 내궁인 황대신궁皇大神宮(kotaijingu)과 외궁인 풍수대신궁農受大神宮(Toyokedaijingu)으로 나뉘어져 있다. 매년 수많은 일본인들이 찾고 있다.

길잡이가 신도에 대해 설명해 준다. 일본인들은 모든 동식물과 산과 강에 신이 있다고 믿는다. 그 수만 해도 수백 만에 이른다고 한다. 애니미즘(animism)이다. 심지어는 왕이 죽어도 신이 되는데, 왕실에 관련된 신을 모시는 신사神社를 신궁이라 부른다. 신궁은 20년마다 기존의 건물 옆에 새 건물을 지어 옮긴다. 신은 일반인이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신이 자리잡은 정궁正宮은 나무 담장 네 개로 가로막혀 있는데, 사람들은 가장 바깥에 있는 네번 째 담장(흔히 신사를 상징하는 토리이라는 문)을 지나 세번 째 담장 앞에서 경배할 뿐이다. 일반인은 스스로 세번 째 담장을 지날 수가 없다. 격식을 갖추어 사제(priest)가 특별히 인도를 해줘야 가능하다.

신화의 신과 역사의 신

일본 사람들은 수많은 신과 신화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실제 있는 것처럼 인식하거나 아예 사실로 둔갑시키곤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실을 믿고 역사를 두려워한다면 일본인들은 신화를 믿고 신을 두려워한다. 지식인들조차도 객관적 역사와 사실을 버리고 신과 신화를 필요에 따라 아무렇치도 않게 역사와 사실로 바꿔치기하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섬뜩하다. 어떻게 사지멀쩡한 사람들의 이성이 이토록 쉽게 마비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신사나 신궁을 방문할 때마다 신이 자리잡은 자리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 했다.

우리나라에서 절에 가면 부처님 상이 있고, 성당에 가면 그리스도의 상이 있다. 누구나 사람이 다가가 볼 수 있고, 그것이 전부다. 하지만 신사와 신궁에서는 일반인이 볼 수 있는 것은 가림막이고 신은 가림막 저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신이 머무는 정궁 (신사에서는 본전本殿)은 첫번 째와 두번 째 나무 담장 사이에 있어서 사람들은 절대로 신의 자리를 볼 수도 접근할 수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번 째 담장 앞에서 그냥 동전을 던지고 박수 두 번 친 뒤 천으로 가려져 있는 안쪽을 향해 고개 숙여 기도를 할 뿐이다.

일본인 친구나 길잡이의 설명에 따르면 신이 자리한 곳에는 보통 오래된 거울이나 돌이나 나무토막을 놓아둔다. 신의 자리에 아무 것도 없는 신사도 있다고 했다. 이세신궁에는 천조대어신을 상징하는 거울이 놓여져 있다고 한다. 나는 참 어이가 없었다. 8할이나 되는 일본인들의 정신줄을 지배하는 절대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고작 거울이나 돌이라니 말이다.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절대 권력과 폭력을 행사해온 존재가 알고보니 한낱 생쥐같은 미물이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허탈한 반전이다.

박근혜가 ‘신궁’에서 사는 법

삼백 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세월호 참사 당시, 사고 발생 7시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박근혜씨는 생뚱맞게도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발견하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드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도대체 어디서 뭘 하다가 나타났길래 저지경인가 했다. 국민들은 물론이려니와 해외에서도 시시각각 물속으로 가라앉는 세월호를 지켜보면서 발만 동동 굴렀잖은가.

나는 이세신궁을 돌아보면서 박씨가 보여준 언행을 상기했다. 그는 스스로를 한국을 지키는 신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아버지 박정희가 반신반인이라 하지 않았는가. 일제 신민지 시절에 일본인의 정신줄을 빼속깊이 새긴 친일파였고 해방 이후 이 나라를 지배해 온 기회주의자들 아닌가. 그러니 박씨는 신궁에 들어앉아 사제의 시중을 받으면서 신비롭고 우아하게 세상을 지배하는 일본의 신을 꿈꾸었을 법하다. 그에게 권력과 재물은 당연한 것이고, 정부관료제는 사제일 뿐이며, 국민들은 하찮은 존재였을 것이다.

완벽한 존재로서 신은 인간 세상과는 거리를 두면서 천부인권과 같은 권력을 고상하게 누릴 뿐이다. 삼성과 국정원의 돈을 받은 것도 너무나 당연하다. 신의 권리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일을 시시 콜콜 이래라 저래라 하면 “모냥빠진다.” 모두 사제들이 알아서 처리할 일이다. 문제가 있으면 신의 탓이 아니라 심부름꾼의 잘못이다. 그래서 해양경찰청은 잘못했어야만 했고 해체되어야 했다. 박씨는 오직 문고리 삼인방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했다. 장관도 안보실장도 비서실장도 박씨를 알현하기 어려웠다. 박씨가 7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한다. 하물며 여신의 은밀한 사생활임에랴. 품위 유지를 위해 기꺼이 기치료도 받고, 올림머리도 하고, 태반주사도 챙겨맞은 정성이 어디인가.

정부관료제는 신을 지키기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사제였다. 세월호 7시간 박씨의 행적은 거짓말로 드러났다. 보고시간이나 지시사항도 조작되었다. 훈령을 임의로 고쳐서 청와대가 국가위기관리를 책임지지 않는다고 우겼다. 검찰은 법원의 영장을 받아들고서도 박근혜 청와대를 압수수색하지 못했다. 청와대는 환관과 탐관오리들로 둘러싸인 신궁이었다. 최근에는 기무사령부가 탄핵안이 기각될 경우 계엄을 선포하여 국민과 촛불집회를 찍어누르려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절대 존재인 신을 지키기 위한 사제들의 필사적인 항거였다. 관료제에 국민은 없었다.

하지만 그 어마어마한 여신의 자리에는 “공항장애”에도 불구하고 연설문까지 “컨펌”했던 최순실이 있었다. 권력서열 1위인 최씨에게 휘둘리고 떠밀려 꼭두각시가 된 No. 3 박근혜씨가 있었다. 사람들이 허탈해하다가 분노한 이유다. 여신은 커녕 고작 깨진 돌조각이나 나무토막이었으니 말이다. 이젠 촛불시민들에게 끌려내려와 드넓은 감방에서 우아하게 식기를 닦는 늙은 공주가 되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는 신과 신화가 아닌 역사와 사실을 경계하며 살고 있다. 역사와 사실이라는 촛불이 말한다. 신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국민이라고. 신궁을 나오면서 생각한 것이다.

인용하기: 박헌명. 2018. 신화의 신과 역사의 신이 사는 법. <최소주의행정학> 3(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