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Young Lee

월간
 
최소주의행정학





3

8

 
2
0
1
8

8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최소한을 의식주라고 한다. 왜 살 곳이 입을 것과 먹을 거리 다음에 오는 것일까? 아마도 긴 시간이 필요하고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리라. 한국에서 아파트집(apartment)은 흔히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이라고 한다. 부와 탐욕을 상징한다. 서울 강남의 웬만한 아파트집(흔히 “아파트”로 통용되는)은 25-30평형 기준으로 보통 15억원을 넘는다. 이런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기 위해 서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수십 년 동안 월급을 모아야 한다. 강남 아파트 불패신화는 요즘 서울 전역으로 파고 들어 문재인 정부를 옥죄고 있다.

식구가 늘면서 지난 해부터 집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산너머에 경관이 뛰어난 아파트 단지가 공공기관의 발주로 지어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공성과 환경보호 문제로 벌써 몇 년 째 미뤄졌는데, 드디어 분양을 하게 되었으니 사람들의 기대감이 폭발하였다. “로또”라는 소문이 돌았다. 당첨만 되면 당장 억 대 프리미엄을 챙길 수 있다고도 했다. 가까운 동무가 등떠밀 듯 분양신청을 권했다.

아파트집 분양신청이 처음인 나는 지어진 아파트를 사는 것이 아니라 조감도와 맛보기집(show house) 만 보고 결정을 한다는 소리를 듣고 놀랐다. 분양 후 3년 뒤에나 지어질 집을 미리 돈을 주고 예매한다는 것이 떨떠름하다. 소비자들이 “제발 집 한 채만 줍쇼”라고 조아리면서 돈다발을 드리밀어야 한다. 아직까지도 정부와 공급자들은 분양원가를 밝히지 않고 있다. 집을 지어 파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유리한 방식이다. 애초부터 “갑질” 냄새가 확 풍기는 일이다.

“선수”들에게만 친절한 분양공고

깨알같이 적힌 분양공고를 확대해서 읽으면서 나는 속이 불편했다. 일반 시민들이 읽고 이해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니가 알아서 이해해라”는 소리다. 닳고 닳은 “선수”들을 위한 주의사항이라고나 할까? 예컨대, 국민주택과 민영주택이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같은 공공기관이 공급하는 아파트인데, 84m2보다 작다고 국민주택이고 크다고(97m2형) 민영주택이라니… 차라리 공급주체에 따라 공영주택과 민영주택으로 나눌 일이거늘… 또 전용면적이니 공용면적이니 공급면적이니 하는 소리는 “선수”가 아닌 사람들을 홀리는 숫자놀음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일반인이 알기 어려운 용어와 표현이 수두룩했다. 한 젊은이는 규정을 모르고 청약을 했는데도 당첨되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리며 기뻐했다.

이번 분양에서 일반분양은 1순위와 2순위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63%를 차지하는 특별분양은 기관추천, 국가 유공자, 생애최초, 신혼, 다가구, 노부모 부양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신청할 수 있었다. 각 유형 별로 자격 기준과 제출 서류가 달라서 어느 것이 본인에게 해당되는지, 어느 것이 유리한지 알기 어려웠다. 언론 보도를 참고하거나 귀동냥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해당 웹집을 방문했지만 아파트집을 광고하는 문구, 조감도, 맛보기집을 찍은 사진 정도를 볼 수 있었다. 확대경이 없이는 볼 수 없는 분양공고 파일 그대로를 덩그러니 올려놓았을 뿐이다. 공급자가 원하는 내용을 멋있는 사진으로 전시하고 있지 소비자가 궁금해할 만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단히 불친절한 웹집이었다. 문의사항을 물어보라는 전화번호가 있었지만 “역시나”였다. 통화량이 많아서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만 해댔다. 한참을 기다려도, 여러 번 통화를 시도해도 똑같은 소리였다. 분양에 관한 궁금증을 풀기는 커녕 인내심과 통신비만 허공에 날렸다. 생색용에 가까운 문의전화번호였다. “답답한 니가 참으세요”라고 배짱을 부리는 듯했다.

이미 언론에서는 청약광풍이 분다고 진단하고 아무리 못해도 경쟁률이 100대 1을 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일반공급 1순위 청약에만 15만 명이 몰려 평균 경쟁률이 240대 1이었으며, 특별공급은 평균 11대 1로 집계되었다. 일반분양 최고 경쟁률은 540대 1에 이르렀다. 이러한 소비자의 관심과 청약수요는 오래 전부터 예상되었지만 사업자는 소비자의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게을러 터졌다. 그럴듯한 사진으로 치장한 웹집은 내용이 부실했고, 문의전화는 언제나 통화중이었다. 답답한 나머지 맛보기집에 직접 방문하여 직원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분양초짜의 맛보기집 줄서기

그렇찮아도 나는 아파트 분양이 대체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 맛보기집이 어떤 분위기인지 궁금하였다. 특별히 공공기관이 분양과정에서 어떻게 신청자를 대우하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맛보기집(“모델하우스”)이 문을 여는 오전 10시에 맞추어 도착했다. 올해 유난스레 뜨거웠던 여름이 한껏 폭염을 뽐내던 날이었다. 터다지기를 마친 허허벌판에 세워진 맛보기집 입구에 다다르자마자 나는 깜짝 놀랐다. 맛보기집 뒤쪽은 벌써 차가 가득 들어 차 있었다. 적잖은 사람들이 7시부터 와서 기다렸댄다. 사람들은 입구에서 줄을 서기 시작해서 맛보기집 뒤에 세워진 천막 안을 채웠고, 차츰 공터에 주차된 차 사이에 줄을 만들어 순대 모양으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천막 안에 줄을 선 2백여 명을 제외하고는 폭염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입이 딱 벌어질 만한 광경이었다. 그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아 막 도착한 사람들은 뛰기 시작했다.

연일 맹위를 떨치던 폭염 속에 네댓 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은 차라리 고문이었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대부분이 노인들과 여자들이었다. 개중에는 모자와 양산을 가져오기도 했고, 먹을 거리와 마실 거리를 챙겨오기도 했다. 식구들이 와서 교대로 줄을 지키기도 했다. 나처럼 대책없이 혼자서 전화기만 달랑 들고 온 초짜는 드물었다. 천막 안은 아쉬운대로 생수가 제공되고 냉방기가 돌아갔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매마르고 후끈 달아오른 맨땅에 무방비로 서 있었다. 노출된 팔다리와 목이 타버렸다. 젊은 아낙의 등에 업혀 온 젖먹이는 칭얼대다 지쳐 늘어졌다. 사업자는 급한대로 허름한 그늘막이라도 설치하고 구급차를 준비ᅵ시켰ᆻ어ᅧ야 했다. 냉방기는 어렵다 해도 마실 물이라도 제공했어야 했다. 오죽했으면 누군가가 생수병을 사와 곱절 값에 팔았겠는가. 또 사람들이 인부들의 화장실을 물어 물어 찾아가게 할 일이 아니었다. 공공기관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을 외면하고 시민들을 이리 박대해서야 어디...

드디어 일부 사람들이 폭발했다. 서류를 제출하러 두번 째 맛보기집을 방문했을 때였다. 당첨자와 예비당첨자만 모여서 첫번 째보다는 사람들은 적었지만 맛보기집 안에 들어가기까지 고역인 것은 매한가지였다. 당첨자보다 예비당첨자를 먼저 들여보내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잘못 배부된 번호표가 시비거리가 되었다. 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뒷번호를 받았다. 번호표는 받아들었지만 순서를 신뢰할 수가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줄에 그대로 서 있었다. 언성이 높아지면서 방문객과 안내원들이 대치하였다.

사람들은 해명과 개선을 요구했고 안내원들은 자신들이 지시받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맞섰다. 분개한 사람들은 책임자를 나오라고 했고, 안내원은 책임자의 이름도 연락처도 알려주지 않았다. 누구도 믿지 못하겠는지 다들 입구에 몰려들었고 순간 안내원들의 얼굴색이 바뀌었다. 이쯤되면 폭동이 일어나 난장판이 되고 끝내는 책임자 모가지가 죽창에 걸리는 영화의 장면이 떠오른다. 서류를 제출하고 나서 안내원에게 물었더니, 그들은 일용직이고 상사가 누구인지 어느 회사 소속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애초부터 사업자는 신청인들과 대화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권한도 없는 일용직을 동원하여 “집 한 채만 줍쇼”하는 “거렁뱅이들”을 상대하게 했다. 거칠게 말하자면 완장채운 용역 직원과 신청인들이 언쟁하고 몸싸움하는 광경을 멀찍이서 즐기는 책임자의 품격이라고나 할까. 양쪽 모두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서로에게 삿대질하는 사이에 책임자는 빠지고 그의 책임은 사라진다. 참으로 비열한 처사다.

큰 고객, 작은 서버

대기줄 이론(queueing theory)에서 보면 소비자가 폭발하듯 도착했지만 시스템은 처리능력이 터무니없이 작았고 대기줄을 다루는데도 소홀했다. 안내원은 줄세우는 데만 몰두할 뿐이고 사람들의 불편과 안전은 뒷전이었다. 그 결과 대기 비용 대부분을 소비자가 고스란히 부담하였다.

먼저 잠재고객(calling population)은 무한대는 아니어도 충분히 많았다. 맛보기집에 사람들이 몰린 것 이상으로 분양신청을 했다. 고객이 도착하는 것은 포아송분포(Poisson distribution)를 따르지만, 평균도착수(λ)가 일정치 않고 최대치가 매우 컸다. 10시 전후해서 집중되었고 심지어는 7시부터 맛보기집 앞에서 기다린 사람들도 많았다. 장장 6시간을 폭염과 싸우면서 기다리다 맛보기집 안에 들어갔을 때, 나는 도대체 몇 명이 상담을 하는지를 먼저 살폈다. 고작 6명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혀를 찼다. 내가 받은 번호표는 321번이었는데, 상담신청은 이미 끝나버린 뒤였다. 서류를 제출하려고 다시 방문했을 때는 10-12명이 서류를 받고 있었다. 맛보기집 안에는 서버수(s)를 배로 늘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지만 사업자는 상담사나 접수인을 늘리지 않았다. 평균서비스시간 (1/μ)은 분양유형별로 달랐다. 예컨대, 일반분양 서류접수는 3분이면 족했으나 노부모와 다자녀 특별분양은 15-20분이 걸렸다. 당연히 특별분양에 더 많은 인원을 투입했어야 했다.

대기줄이 엉망이었다

맛보기집을 시스템으로 봤을 때 대기줄(queue)이 너무 짧았다. 시스템을 주차장까지 확대하더라도 일렬로 이어진 대기줄은 짧았다. 한마디로 대기줄 설계가 엉망이었다. 방문자들은 맛보기집 밖에서 줄을 섰고, 혼잡을 피하기 위해 입구에서 20명씩 새 줄에서 기다렸고, 상담을 받거나 서류를 제출하기 위해 다시 줄을 서야 했다.

고객은 몰려들고 서버수는 터무니없이 적고 대기줄이 너무 짧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줄을 세울 것이 아니라 입구에서 번호표를 선착순으로 정확하고 나누어 주었어야 했다. 엉터리 대기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뙤약볕에서 장시간 생고생을 한 셈이다. 맛보기집 안에서도 줄을 세우지 말고 유형에 따라 번호표를 나누어 주었어야 했다. 하지만 줄을 세우면서 어설프게 번호표를 나누어 주다 혼동과 분란만 초래했다. 또 맛보기집을 둘러보려는 단순 방문자와 상담을 받기 위에 찾아온 고객을 구분했어야 했다. 상담고객이 맛보기집에 오래 머물면서 방문자 역시 애꿎게 오래 기다려야만 했다.

대기줄에서 기다리는 고객을 부르는 규칙(queue discipline)도 문제가 있었다. 예컨대, 서류를 제출할 때 입구에 있는 직원이 서류를 검토하고 분양유형에 따라 일련번호표를 주었다. 하지만 한 직원이 두 가지 유형의 서류를 받으면서 혼란이 생겼다. 일반분양과는 달리 번호를 부르지 않아 신청자의 순서를 알기 어려웠다. 또 서류제출시 당첨자보다 예비당첨자를 우선 들여보내 논란이 되었다. 5세 미만 아이를 데려온 방문객에게 우선권을 준 것은 고객의 안전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할 만 하다.

투기판, 사기판, 정치판이다

내가 관찰한 아파트집 분양은 갑질이다. 아파트를 짓는 사람과 사는 사람 모두 제정신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분양에 그렇게 사람이 몰리고 돈이 몰리는 것을 맨정신으로 이해할 수 없다. 계약하러 온 어떤 이는 프리미엄만 벌써 1억 5천이고 몇 채씩 분양받은 사람도 있다고 떠벌렸다. 진위여부를 떠나서 분양신청자들의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말이다. 수많은 탈락자들이 “로또”에 당첨된 소수를 부러워하고 원망하는 그런 투기판이다. 살아남기 위해 가진 자들의 못된 짓을 배운 백성의 모습이다.

그런 투기 수요에 공급자는 아쉬울 것이 없다. 아파트집을 짓기도 전에 설계도도 없이 그럴듯한 조감도와 맛보기집으로 분양을 할 수 있다. 분양원가와 세세한 항목을 밝히지 않고 분양가를 책정한다. 소비자는 집의 정확한 모습과 품질을 판별할 수 없으며 가격이 적정한지를 따질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애초부터 시장실패는 불가피하다. 사전분양이 불완전한 계약이며 공정할 수 없는 까닭이다. 갑甲인 사업자는 친절하게 분양공고를 설명해주지 않았고, 을乙인 고객을 뙤약볕에 방치해 놓고 최소한의 그늘막이나 물도 제공하지 않았다. 책임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임시직원을 내세워 시민들의 궁금증과 분노를 짓눌렀다.

어쩌면 아파트 분양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축소판이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그려진 그대로다. 신의 만찬에 초대받지 못한 자들이 열차 끝에서 바둥대면서 앞으로 나가고 있고, 열차 앞에서는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을 휘두른다. 뙤약볕이 불타는 곳에서 천막안으로, 다시 입구에서 맛보기집 안으로 전진하면서 냉방기와 생수가 제공되고 덧신과 안락의자가 추가된다. 인간대접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줄을 서고 번호표를 또 움켜쥔다. 죽기살기 전쟁이다.

흔히 아파트 분양은 시장 논리이며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 곡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득권자의 횡포에 가깝다. 아파트 가격을 떠받치는 세력이 버티는 한 강남에 수백만 채를 공급한다 해도 그 탐욕은 채울 길이 없다. 은행대출을 규제하고 세금을 강화해도 그들은 버티면서 반격을 도모한다. 규제가 약하면 실실 비웃고 강하면 세금폭탄이라며 대든다. 가진 자가 못가진 자들을 구석(주택분양)에 몰아넣고 경쟁과 불안을 부추겨 가격상승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은 가진 자들이 대부분을 갖게 되는 사기판이다. 돈이 없으면 아파트를 살 수도, 유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힘겨루기이자 돈겨루기다.

아파트집 문제는 복잡하고 역동적이다. 토지, 증권시장, 이자율, 환율까지 얽히고 설킨 난제다.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피튀기는 몸싸움이다. 약육강식의 현실이다. 이래서 시장과 정부 모두 실패하기 쉽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그 어려움을 이해하고 참고 견디면서 길게 호흡했으면 한다.

인용하기: 박헌명. 2018. 아파트 분양은 갑질이자 정치다. <최소주의행정학> 3(8): 1-2.

2019. 02. 12 마지막 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