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Young Lee

월간
 
최소주의행정학





3

11

 
2
0
1
8

11

선동렬 국가대표 야구감독이 11월 14일 전임감독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국가대표 야구선수단의 명예회복, 국가대표 야구 감독으로서의 자존심 회복,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영예 회복”을 위해서라고 했다. 선감독은 올해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선발과정에서 일부 선수에게 병역면제 특혜를 주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일부 야구팬들은 분노했고 비난을 쏟았냈다. 심지어는 야구대표팀이 은메달을 따길 바란다며 조롱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야구 대표팀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의혹과 비난은 잦아들지 않았다. 급기야 선감독은 지난 달 10일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불려나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호통을 듣고 굴욕을 당했다. 23일 국정감사에 출석한 정운찬 한국야구위원회 총재는 야구대표팀 전임감독이 필요하지 않으며, 선감독이 경기장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텔레비젼으로 야구경기를 본 것은 불찰이라고 말했다. 갑작스런 사퇴선언에 놀란 야구위원회와 정총재는 선감독을 붙잡는다고 소동을 벌이고 있다. 참으로 한심하고 짜증나는 일이다. 과연 선동렬 감독은 그런 지탄을 받아 마땅한가?

선동렬은 영웅이고 전설이다

선감독은 지금까지 줄곧 야구인으로 살아왔고, 야구선수로서 야구감독으로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은 업적을 이뤄냈다. 그는 주요 대목마다 감동을 안겨준 영웅이었고 야구계의 전설이 되었다. 그에게 야구는 단순한 경기가 아니라 삶 자체였다. 선감독은 사퇴하는 것이 “야구에 대한 저의 절대적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고, 야구에 대한 열정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저는 우리 시대 청년들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병역 특례에 대한 시대적 비판에 둔감했습니다. 금메달 획득이라는 목표에 매달려 시대의 정서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공을 만지기 시작한 이래 저는 눈을 뜨자마자 야구를 생각했고, 밥 먹을 때도 야구를 생각했고, 잘 때도, 꿈속에서도 야구만을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선감독은 평생 한 우물만 팠고 끝내 일가를 이루었다. 뛰어난 그의 전문성과 업적은 선동렬을 영웅과 전설로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즐거움을 얻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무등산 폭격기”와 “국보급 투수”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선감독의 재능과 헌신을 오래 기릴 것이라 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제 성질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실확인과 증거도 없이 선감독을 깎아내리느라 여념이 없다. 전문가의 권위를 허물고 영웅을 만신창이로 만들지 못해 안달이 나 있다. 차범근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축구대표팀에서 물러났을 때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왜 우리는 전문성을 인정하고 존중하지 못는 것일까? 영웅을 영웅으로 지키고 대접하지 못하는 것일까?

전문성을 모르는 바보들의 난동

선감독에게 돌팔매질을 해대는 야구팬이나 선감독을 국정감사장에 불러내어 호통치는 정치인이나 눈앞에 닥친 위기를 모면하려 아무말이나 둘러대는 총재나 무책임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각자 기분에 따라, 자신의 처지에서 유리한 “정치질”을 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손혜원씨나 정운찬씨가 야구팬이라 하더라도 야구전문가라 할 수 없다. 선감독 앞에서는 오묘한 야구의 맛을 구별하지 못하는 불감증환자거나 바보천치일 뿐이다. 기껏해봤자 공자님 앞에서 문자쓰는 격이다. 바보는 자신이 바보임을 모른다. 그래서 단순무식한 용맹스러움은 서슴거리지 않는다. 그들은 선감독의 재능과 경험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물증이 아닌 심증으로 선감독의 유죄를 확신하고 있다. 문자가 틀렸다며 다짜고짜 공자의 뺨을 후려치고 있다. 이 패악질은 바보들의 난동이다.

이른바 “야구팬”임네 하면서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비단 야구 뿐인가? 어느 선수가 득점을 하면 환호성을 지르다가 어쩌다 실수라도 하면 야유를 보내고 삿대질을 한다. 선수가 그것도 못치냐며 힐난하고 그런 쉬운 공도 못잡냐며 분개한다. 누구를 빼고 누구를 넣어야 한다거나, 이 대목에서 누구를 구원투수나 대타로 기용해야 한다며 감독의 무능을 한탄한다. 어느 영화에서처럼 한 성깔하는 팬들은 술먹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보호그물에 오르기도 한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으면 아예 웃통벗고 경기장에 난입하여 소동을 피우는 자들도 있다. 철없는 자들의 난동질이다. 텔레비젼으로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제갈량의 혜안”으로 훈수질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여가 활동으로 야구 경기를 보는 사람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경기를 즐길 수 있다. 각자 좋아하는 선수나 야구단이 있고, 좋아하는 야구 기량과 전략이 있다. 야구 규칙을 모른다고 해서 야구를 보지 말란 법도 없다. 맞든 틀리든 각자 즐겁게 야구를 보면 된다. 하지만 자신의 선호와 의견과 기대와 다르다고 해서 선수에게 삿대질을 하고 감독을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 경기 중에 실수를 했다고 해도 선수와 감독에게 돌팔매질하는 것은 과하다. 야구에 관한 한 야구 전문가와 맞먹으려 달려드는 짓은 무례하고 어리석다.

관중의 훈수질은 자기만족을 위한 훈수질에 그쳐야 한다. 야구 전문성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아무리 야구를 해봤고 오랫동안 야구를 봐왔다 해도 프로야구 선수나 감독의 전문성에 미치지 못한다. 선수출신으로 오랫동안 야구 해설을 해왔던 허구연씨도 감독으로서 처참한 성적에 고개를 떨궈야 했다. 하물며 야구를 눈으로 즐겨온 “야구광팬”임에랴… 한마디로 야구인들의 전문성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설령 자신의 생각과 달라서 동의하지 못한다 해도 전문가의 판단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전문성이 없는 전문가들의 시대

막스 베버(Max Weber)의 관료제는 전문화된 관리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관료제가 합리화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업무를 잘 나누고(division of labor), 그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들을 데려와서 맡기고, 전업으로 최대 능력을 발휘하도록 자리도 보장해주고 급료를 지불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이런 전문가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같지 않다. 전문가가 되려면 그 전문분야에서 철저한 훈련 (thorough training in a field of specialization)이 필요하고, 자격요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선감독으로 치면 피땀흘리며 기량을 연마해 왔고, 각종 경기에서 빼어난 성적을 냈으며, 감독으로서도 여러차레 우승을 일구었다. 그의 야구 전문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 전문성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는 많이 아쉽다. 전문성에 걸맞는 가치(가격)를 부여하고 권위(존경)를 세워주는 일에 인색하다. 어쩌면 인격을 가진 자연인으로서 혹은 주권자로서 누구나 동등하다는 생각이 지나쳐 전문성도 똑같다고 착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내용으로서 전문성보다는 절차로서 자격요건을 충족시키는데 몰입하고 있는지 모른다. 오래 전부터 박사학위가 넘처나는 사회다. 운전면허증을 따듯이 박사학위를 따는 사회다. 학력과잉 사회다. 길거리에 치는 것이 박사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그 많은 박사 중에 과연 얼마나 학위에 걸맞는 전문성을 갖추었을까? 박사는 많은데 진짜 박사는 드물다는 자조가 있다. 엉터리 박사를 확인할 방법도 절차도 마땅찮긴 하나, 행여 악화가 양화를 쫓아내는 형국은 아닌지…

요즘 방송에 여기 저기 출연하여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오만가지 일에 대해 설명하고 해석하고 나름의 처방을 내놓곤 한다. 무슨 학위를 받았는지, 무슨 경험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정치면 정치, 경제면 경제, 법이면 법 도대체 모르는 것이 없어 보인다. 사회자가 무슨 질문을 던지면 자동판매기처럼 술술술 답을 풀어낸다. 질문받은 분야를 공부하지 않아서 자신은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 처음에는 그들의 박학다식에 놀라워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수준이 대체로 일반 상식에 머물러 있음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이 전문성이라기보다는 화려한 말재주나 자극적인 말장난으로 방송을 이어가고 있다. 어쩌면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한 우물만 깊이 파고 드는 전문가(specialist)가 아니라, 멀쩡한 외모와 화술로 여기 저기 그럴 듯하게 긁어주는(무책임한 “훈수질”과 “정치질”에 능한) 일반인(generalist)일는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대중은 전문성을 구별해내기 힘들다. 여론을 조작하고 탄압한 정부에서는 용기있는 사람들이 힘들게 진실을 말하기 때문에 그나마 낫다. 하지만 민주 정부에서는 아무나 말을 쏟아내기 때문에 진짜와 가짜를 골라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작정을 하고 뉴스를 날조하여 퍼트리는 경우에는 진실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힘겨루기가 된다. 지금 촛불정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쉽게 값싸게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이 자신의 구미에 맞는 얘기만 골라듣는 경향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누군가 날조뉴스를 생산하면 수구세력들이 유투비(YouTube), 전자우편, 모바일 메신저(카카오톡) 등에서 “아무말 대잔치”를 벌인다. 과거에 권력으로 여론을 찍어눌렀던 자들이 이번엔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면서 부르짖고 있다. 딱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서로 다른 입장에 선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고 우열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끝간데 없는 화력싸움만 벌이고 있다. 이 싸움은 대개 쪽수 많고 목소리 큰 무리가 이기게 되어 있다.

무책임한 정치인들의 과대망상

모든 주권자들이 자유롭게 의사표시를 하고 각자의 인격이 차별없이 존중되는 것이 민주사회의 기본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능력에 차이가 있고 전문성에 차이가 있다. 누구나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쌓고 있으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전문성을 서로 인정해줘야 한다. 선감독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자연인으로서, 주권자로서의 기본권리를 똑같이 누리고 있지만 야구라는 영역에서 선감독의 전문성은 독보적이다.

그런데 돈과 권력을 쥔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와 전문성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명박씨는 걸핏하면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면서 일을 담당한 공무원의 전문성을 무시하곤 했다. 하다 못해 전봇대 하나 뽑는 일도 직접 챙긴 “이상사”였다. 박근혜씨도 일개 국장 하나 짜르라고 꼼꼼하게 지시하다가 망했다. 대통령이면 세상 만물을 다 아는가? 장관이나 국회의원은 어떠한가? 기업의 총수는 어떠한가? 이들의 갑질은 전문성에 대한 몰이해로 시작해서 권한남용으로 끝난다.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우주의 이치를 깨우친 천재가 된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자들이 많다. 자신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면 먼저 공부를 하고 해당 전문가에 물어서 신중하게 판단을 해야 한다. 손혜원씨가 야구팬이었다고는 하나 선감독이 정말 능력대로 선수를 선발했는지, 집에서 텔레비젼으로 경기를 보는 것이 적절한지, 야구우승이 어렵지 않다는 등의 발언을 쏟아낸 것은 한참 지나친 언행이다. 도대체 누가 누굴 가르치려 드는가? 야구 경기를 좀 봤다고 야구 전문가가 된 것인 양 기고만장인 것은 과대망상일 뿐이다. 국회의원이라는 힘으로(국정감사장에 불러다가 아무 말이나 다 쏟아낸다는 점에서) 선감독의 권한과 전문성을 깔아뭉개는 짓이다. 누군가가 손씨에게 그림이나 치던 환쟁이가 어디서 감히 나대냐고 한다면 뭐라 대꾸할 것인가? 입에서 나왔다고 다 말인가?

이래서 과대망상 정치인의 “갑질”은 선감독에게 곤혹 그 자체다. 자신은 야구를 말하고 있는데, 병역면제 책임을 묻고 비난하고 있으니 말이다. 거꾸로 말하면 정치인은 호기롭게 병역면제를 따지는데 선감독은 아는 것이 야구라서 야구 얘기만 하고 있으니 어찌 답답하지 않겠는가? 야구만 생각하고 살아온 사람에게 생뚱맞게 정치를 물어놓고 맞네 틀리네 따지고 자빠졌으니… 국정감사에서 손혜원씨가 선감독을 다그친 대목을 살펴보자.

“저는 선감독께서 지금부터 하실 일 두가지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과를 하시든지 사퇴를 하시든지… 지금 이렇게 끝까지 버티고 우기시면 계속 2020년까지 가기 힘듭니다.” “지금 1,200만 야구 팬들이요… 지난 한달 동안 20프로가 관객이 줄었습니다. 선감독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수를 소신껏 뽑아서] 우승했단 얘기하지 마십시오. 그 우승이 그렇게 어려운 거라고 다들 생각하지 않습니다.”

손혜원씨는 세상 일을 손바닥 내려다보듯 하는 권능과 재주를 가졌다고 생각했을까? 누가 손씨에게 국가대표 야구감독을 그만두게 할 권한을 주었는가? 동경올림픽까지 감독직을 보장받은 선감독 아닌가? 특혜사실을 확인하거나 증거를 내놓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선감독이 버티고 우긴다고 단정하는 “용맹스러움”은 무엇인가? 선감독 때문에 야구 관객이 2할이나 줄었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정말 다들 야구우승이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차기 대표팀감독으로 손씨를 추천하고 있다(우승이 그리 만만하다는 “여장군”이면 차라리 메이저리그 감독으로 모셔갈 일이다) 실력대로 소신껏 선수를 뽑았다고 강변하는 선감독은 완전히 낙담하는 얼굴이다.

심증이 항상 틀린 것은 아니지만 병역면제시비는 명백한 증거가 필요하다. 선감독의 명성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병역면제가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병역면제가 야구 밖에서 시작된 일인 이상 야구장 밖에서 물증을 찾아야 했다. 예컨대, 선감독이 선수나 구단에게 언제 어디서 금품을 받았다거나 선수의 능력이 형편없었다는 증거가 필요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물증을 제시하지 못했다. 병역면제 혜택은 9명이 받았는데, 비난은 나이가 많은 오지환과 박해민에게 몰려있다. 병역면제를 기대하면서 일부러 경찰청과 상무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 성적만 봐도 국가대표가 될 수 없을 만큼 형편없는 선수는 아니었다. 김수민씨의 말대로 수치로 표현된 1등만을 뽑아야 하는 것일까? 그러면 감독은 무엇을 하는가? KBO에서는 선동렬감독에게 동경올림픽까지 전권을 줬다고 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선감독이 부여받은 권한과 전문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일까? 과대망상으로 선감독을 몰아붙인 손혜원씨나 유치찬란한 김수민씨나 정당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 소신껏 뽑았다는 주장을 털끝만큼도 반박할 수 없었다. 손씨의 엉뚱하고 황당한 헛발질을 적어본다.

“연봉을 얼마나 받으세요?”(황당한 선감독)“ 그리고 판공비는요?”(어이없어 웃는 선감독)“감독이 하시는 일이 뭡니까? … 근무시간이 어떻게 됩니까? 몇 시에 출근해서 몇 시까지 계십니까?”(야구감독이 교대근무하나?)

도대체 뭘 하자는 것인가? 감독에게 감독이 하는 일이 뭐냐고 묻는게 멀쩡한 정신줄인가? 같은 방식으로 손씨에게 물어보면 어찌할까?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 뭡니까라고. 몇 시에 출근해서 몇 시에 퇴근하느냐고. 국민의 피와 땀을 세비로 몇 억씩이나 받아쳐먹고 출석은 제멋대로이고, 막말과 욕설을 쏟아내면서, 걸핏하면 국회를 파행으로 이끄는 이유가 뭐냐고. 판공비는 차지하더라도 특별활동비로 동료들 용돈을 챙겨주고 집에 가져가 생활비로 주는 이유는 뭐냐고.

“정치야구인”의 기회주의 발언

정운찬 야구위원회 총재도 야구를 좋아하는지는 모르지만 야구전문가는 아니다. 경제학자로서 강단에 섰다가 잠깐 정치를 했던 사람이다. 이런 사정이라면 전임감독이 좋은지 나쁜지, 텔레비젼으로 경기를 보는 것이 적절한지 아닌지는 입에 담지 않았어야 했다. 당장 쏟아지는 책임을 일단 회피하고 보겠다는 속내가 훤히 내비치는 발언을 삼가해야 했다.

“선수선발은 원칙적으로 감독의 고유권한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간섭을 안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선수선발과정에서 여론이 여러가지 비판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제가 선감독에게 알리고 선발과정에 참고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했었더라면, 또 선감독이 이것을 받아들였더라면… 저는 … 지금도 선수선발은 감독이 전적으로 해야 된다고 하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그냥 선수선발은 감독이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손혜원씨가 달변으로 밀어붙이니까 강단없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 것이다. 세종시 원안을 밀어붙이면 나라가 거덜날 수 있다며 호들갑을 떨다가 막상 수정안이 부결되자 입씻고 슬그머니 자리에 눌러앉아 원안대로 추진했던 자 아닌가? 정말 거덜날 것이라고 믿었다면 자리를 내놓는 것이 순리요 상식이다. 나라를 거덜낼 사업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신이 직접 추진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국정감사에서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기회주의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 저는 전임감독제[를] 찬성안합니다 …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야구인들의 오랜 요청으로 전임감독을 두게 되었는데, 국정감사에서 총재가 전임감독이 필요없다고 말하면 어찌 되는 것인가? 탱크처럼 밀고 들어오는 손혜원씨의 주장대로 전임감독제를 폐지하자는 것인가?

또 손혜원씨가 선감독이 집에서 TV로 경기를 본다는 것에 대해 물었을 때 정운찬씨는 “저는 선동렬 감독이 불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야구장에 안가고 선수들을 살펴보고 지도하려는 것은 마치 경제학자가 시장 등 경제현장을 가지 않고 경제지표 가지고서 경제 분석하고 예측하고 정책대안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대단히 부적절하고 불필요한 말이었다. 전임감독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총장하고 총리하다가 어느 날 총재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야구전문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나는 대표팀 감독이 경기장에 가서 선수를 봐야 하는지, 텔레비젼으로 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지는 잘 모른다. 내가 총재였다면 “나는 모른다. 전임감독이 판단할 문제다”라고 답했을 것이다.

야구는 정치가 아니라 경기다

도대체 전권을 부여받은 감독이 선수를 뽑고 경기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 왜 토를 다는가? 특별히 일이 없는 한 감독의 전문성을 인정해 주고 그의 판단을 존중해 줘야 한다. 선감독이 뇌물을 받은 것도 아니고 야구도 모르는 일가친척을 선수로 뽑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감독은 결과에 책임을 질 뿐이다.

야구는 높은 전문성이 필요하다. 동네 야구라면 몰라도 아무나 야구 선수를 하고 야구 감독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전문성이 있든 없든 아무나 몰려와서 감놔라 대추놔라 한다면 난장판일 뿐이다. 맞든 틀리든 민의를 받드는 것이 정치라지만 야구는 정치가 아니다. 경기 중에 실수를 저지른 선수를 빼라고 관중이 소리치면 감독은 당장 불러들여야 하는가? IT강대국답게 야구팬들의 실시간 반응이나 투표로 선수를 쓰고 작전을 결정해야 하는가? 유력 정치인이 누가 잘한다고 하면 그 선수로 교체해야 하는가? “야구 민주주의”를 구현하려는가? 이럴 양이면 뭐하러 감독을 두는가? 그냥 전화나 잘 받는 똘똘한 대학생을 데려다가 주문을 받도록 할 일이다. 예산도 아끼고 효율성이 높다. 아니면 선수들의 성적을 모두 수치화하여 그 수치대로 선수를 기용하면 성에 차겠는가?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만들어 수치계산 결과에 따라 선수를 넣고 빼고 할 일이다. 그러면 경기에서 이기는가?

그런데 경기에서 이기기만 하면 그만인가? 이기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면 지는 것을 아예 없앨 일이다. 모두가 승자가 되도록 하면 된다. 굳이 많은 관중을 불러모아 야구, 축구, 농구 경기를 치러야 할 이유도 없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야구를 하고 그 경기를 지켜보는가? 어쩌면 우리는 지나치게 승부에 집착하다가 정말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야구를 하는 즐거움과 보는 재미를 방구석에 내팽개치고 이기고 지는 것만을 따지는지도 모른다. 승패는 경기의 구성요소일 뿐인데, 이기는 것은 선이고 지는 것은 악으로 몰아 사생결단을 내려는 것은 아닌지…

선감독이 사퇴했으니 누가 그 뒤를 이을지 궁금해진다. 총재가 전임감독이 필요없다고 밝힌 마당에 대표팀 감독을 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무슨 총알받이도 아니고 권한도 없이 책임만 짊어지는 자리아닌가? 가장 강력한 권한이 주어졌다던 전임감독도 비개비(비야구인)에게 속절없이 범죄자 취급을 당한 자리아닌가? 독배를 마시는 것 이상으로 비참하게 용도폐기될 줄을 뻔히 아는데 누가 나서겠는가? 인터넷에서는 벌써 대표팀 감독 하마평이 무성하다. 제일 설득력이 있는 것은 손혜원감독과 정운찬 코치다. 그들이 내뱉어 놓은 말에 따르면 어느 대회라도 어느 팀이 나오더라도 한국팀의 우승은 따놓은 당상아니겠는가.

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일상이다. 나라의 운명이 달린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문제와는 전혀 다르다. 지면 지는 것이고 이기면 이기는 것이다. 이기든 지든 어차피 세상이 망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난리들인가? 그냥 구미당기는 대로 경기 자체를 즐길 수는 없는가? 내가 응원하는 구단이나 선수가 아니라도 훌륭한 경기력에 박수쳐줄 수는 없는가? 철딱서니없는 일부 야구팬들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다들 알만 한 사람들이 똑같이 어거지를 쓰고 난동을 부린대서야 어디… 하물며 야구의 전문성이 없으면서 정치와 경기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임에랴.

따지고 보면 병역면제도 정치인들이 그때그때 여론에 따라(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만들고 바꿔왔다. 박정희와 전두환을 포함한 역대 정권에서 병역면제 혜택을 선심쓰듯이 베풀어 왔다. 국위를 선양한 것은 선수뿐만이 아니라며 BTS에게도 면제 혜택을 주자고 나선 자들도 정치인들이었다. BTS팬들의 말처럼 정치인들이 끼어들어 일을 망치고 있다. 선감독을 불러다가 호통을 칠 것이 아니라 국회 스스로 병역면제를 정치도구로 남용해온 과거를 반성하고 사과했어야 할 일이다. 이제와서 누가 누구에게 책임을 덮어씌운단 말인가.

병역면제를 폐지하든 수정하든 간에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수준에서 결정을 했으면 한다. 일단 정해지면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고무줄 늘이듯이 하지 말고 엄격하게 적용했으면 한다. 또한 사회에서 합의한 절차와 내용을 위반한 자들은 규정대로 엄하게 처벌하되, 단순히 여론과 정치꾼들의 선호에 휘둘려 증거없이 인민재판을 벌이는 일은 경계했으면 한다. 이번 사태에서 선감독이 일반인의 눈에 의심쩍은 판단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물증도 없이 전문가의 판단을 범죄로 모는 것은 바보들의 어리석은 난동일 뿐이다. 전문가를 전문가로 존중하고 영웅을 영웅으로 대접해주는 사회의 품격을 시궁창에 처박는 짓이다. “야구 민주주의”가 어처구니없는 까닭이다.

그래도 선동렬은 영웅이다

우리에게 스포츠 영웅은 무엇인가? 힘들고 고통스런 일상을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고 희망을 준 사람들이다. 김일 선수는 레스링으로, 홍수환은 권투로 국민들을 울고 웃게 했다. 축구에서는 차범근이 있었고 야구에는 선동렬이 있었고 농구에서는 이충희가 있었다. 최근에는 월드컵 4강을 이룬 축구대표팀이 있고, 피겨스케이팅으로 전 세계에 감동을 준 김연아가 있었다. 그 시대의 스포츠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 영웅의 특징은 전성기가 길지 않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그들의 공을 잊고 제대로 대접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어느 왕은 큰 공을 세운 자에게 반역이 아니면 죄를 묻지 않겠다는 문서를 내렸다고 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영웅들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명백히 사회를 해치는 중죄가 아니라면 선처하고 보듬어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孔孟』「梁惠王」下 4장은 “(백성이) 즐거움을 못얻었다고 해서 그의 上을 비난하는 것은 잘못(不得而非其上者非也)”이라고 적고 있다. 작은 것까지 시시콜콜 따지면서 그들의 공을 깎아내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어쩌면 영웅은 사회가 만들고 가꾸고 지켜주는 것이다. 사소한 일이나 분명하지 않은 일로 영웅을 끌어내려 땅바닥에 내팽개치는 사회는 영웅을 갖을 자격이 없다.

어쩌면 선동렬감독은 “정치”를 하지 못해서 그 곤욕을 치렀는지 모른다. 이른바 “올림픽 패러다임”에서 자의반 타의반 살아온 그였다. 야구밖에 모르는 전문가이자 외눈박이었다. 그래서 그는 영웅이 되었고 사람들을 위로하고 즐겁게 했다. 선감독이 살아온 사회가 그랬다. 그런데 이제와서 “정치”를 왜 못했냐고 따지면 어쩌자는 것인가? 사퇴의 변이 아프게 느껴진다. 나는 선감독이 국정감사에서 사과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또다시 영웅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달변은 아니지만 감독의 입장에서 소신있게 뽑았다고 말을 이어가는 것을 아슬아슬하게 지켜봤다. 김감독의 전문성과 업적에 걸맞는 대우를 기대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까?

아무리 그래도 세상사는 난동꾼들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명랑해전에서 죽음의 길로 들어선 이순신을 기억하고 추앙한다. 선조는 왕위를 지켰는지는 몰라도 두고 두고 욕을 먹고 있다. 어쩌면 충무공은 죽어서 돌아왔기 때문에 더 비참하고 끔찍한 상황을 피했는지도 모른다. 이름값에 못미치는 성적으로 물러난 차범근감독도 사람들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난동꾼이 아무리 시끄럽게 설쳐도 사람들은 영웅을 함부로 끌어내리지 않는다. 아마도 선동렬 감독도 지금은 참담하게 떠나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영웅으로 오래 남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인용하기: 박헌명. 2018. 전문가주의를 망치는 바보들의 난동. <최소주의행정학> 3(11): 1-4.

2019. 02. 12 마지막 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