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Young Lee

월간
 
최소주의행정학





4

4

 
2
0
1
9

4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달 20일 문형배씨와 이미선씨를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했다. 이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지난 10일 두 후보자를 대상으로 인사청문회를 열었다. 여야는 이 후보자 내외가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거래한 사실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수구세력은 후보자의 재산내역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고 내부정보를 이용한 의혹이 있다고 했다. 금융위원회에 조사를 의뢰하고 후보자 내외를 검찰에 고발했다. 여당은 주식투자가 실정법 위반이 아니라고 했다. 법조계와 정의당은 이 후보자의 자질과 소수약자라는 점을 부각했다. 이 후보자는 본인의 주식을 처분했다고 밝혔고, 헌법재판관이 되면 남편의 주식도 전부 내다 팔겠다고 했다. 15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할(28.8%)이 적격, 5할 이상(54.6%)이 부적격이라고 답했다. 이런 대결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누구의 눈높이를 말하는가?

누가 “국민의 눈높이”를 운운하면 나는 종종 그 “국민”이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아전인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 후보자 내외의 전체 재산은 43억원이고 그 중 8할이 넘는 35억원을 주식으로 가지고 있다. 후보자 이름으로 된 주식은 약 7억원인데, 모두 남편이 관리를 해왔다고 한다. 판사로 재직하다가 법률회사의 변호사로 일해온 남편의 연봉은 약 5억원이라고 한다. 과연 이들의 재산불리기가 상식에서 벗어난 것일까? 손가락질을 당해 마땅한가?

한 가구의 재산이 40억원을 넘고 개인 재산이 9억원인 것은 보통 사람들의 눈을 벗어난다. 하지만 50대 내외가 판사이고 이름있는 변호사임을 생각하면 놀랄 만한 수준은 아니다. 남편 연봉 전부를 한 10년 저금해서 이자나 챙긴 정도다. 시골 사람들도 다 어림으로 하는 셈법이다. 주식 대신에 서울 강남에 어지간한 아파트 두세 채를 사놓았더라면 크게 재미를 보았을 것이다. 이재理財에 밝지 못한 내외다.

청문회에서 주식이 왜 이렇게 많냐는 푸념도 있었다. 부동산에 분산 투자하지 않고 주식에 몰아넣은 것은 분명 투기의 기본과 거리가 있다. 하지만 주식보유량이 너무 많다거나 비중이 과하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주식과 인연이 없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과할 수 있다. 하지만 증권가에서 보면 재력이 좀 있는 투자자일 뿐이고 재벌 총수의 눈으로 보면 티끌만도 못한 존재다. 그런데 왜 후보자가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주식이 과하든 과하지 않든 실정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사유재산에 대해 시비를 걸 수 있단 말인가. 내외의 기본권을 짓밟는 폭력이다.

또 주식거래가 5천회에 이른다며 근무태도를 비난했다. 10년 동안 거래했다면 월평균 40여 차례 주식거래를 한 셈이다. 과연 근무시간에 업무를 제쳐두고 주식에 몰두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공직자가 업무에 전념해야 함은 당연하지만 사람살이는 기계와 같을 수 없다. 자신들은 걸핏하면 국회를 뛰쳐나가 스스럼없이 딴짓을 하면서 후보자에게는 업무 외의 일(예컨대, 배우자에게 전화를 한다든가, 차를 마신다든가, 인터넷으로 송금을 하는)을 일절 해서는 안된다고 어거지를 쓰는 것은 아닌지. 주식거래에 눈이 팔려 엉터리로 재판을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전수안 전 대법관은 “강원도 화천의 이발소집 딸이 지방대를 나와” 법관이 되었음을 환기시키고 남녀를 통틀어 가장 우수한 법관 중 한 분이라고 했다.

수구세력에게 사유재산이란?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수구세력의 반응이다. 자칭 보수라는 자들이 주식거래를 비난하고 범죄로 몰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자나 깨나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장주의를 숭배하던 자들 아닌가? 사유재산을 반공산주의의 상징처럼 여기던 자들 아닌가? 얼마 전 사립유치원 비리가 나왔을 때만 해도 사유재산을 빼앗는다며 비난했던 자들 아닌가? 2005년 사립학교법을 개정할 때도 사유재산을 지킨답시고 그리 난리를 친 자들 아닌가? 따지고 보면 부동산보다 주식시장에 투자한 것을 칭송해야 할 자들이 아닌가? 도대체 사유재산이 많다고, 주식에 “몰빵”했다고 비난하는 자들이 과연 보수고 시장주의자들인가? 자신의 사유재산은 눈꼽만치도 건들지 못하게 하면서 남의 재산에 대해 트집을 잡는 심보는 무엇인가? 보수도 뭐도 아닌 수구·냉전·기회주의 세력일 뿐이다.

왜 수구세력은 이 후보자를 험악하게 비난하는 것일까? 먼저 이것은 그냥 화풀이다. 결국은 문재인을 헐뜯고 싶은 것인데 대놓고 못하니까 조국을 끌어내리고 싶은 것이다. 조국을 흔들어야 하기 때문에 후보자를 거칠게 몰아붙여야 한다. 주식이 아니었다면 다른 무엇으로도 걸고 넘어졌을 것이다. 이 후보자 내외는 주식 때문에 이 곤욕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조국 때문에 애먼 매를 맞고 있다. 두번째는 수구세력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노무현씨에 대한 저주와 마찬가지다. 성골 진골도 아닌 “듣보잡” 주제에 언감생심 헌법재판관을 꿈꾸다니 어이없는 일이다. 지방대학을 나온, 그것도 멀쩡한 남자가 아닌 “치마” 판사아닌가? 아직 50줄도 안된, 이마에 피도 안마른 애송이 아닌가? 돈을 좀 모았다고 족보를 사서 시답잖은 양반 흉내를 내는 쌍놈의 꼬락서니라니. 목불인견이다. 만일 이 후보자가 스카이를 졸업한 늙어빠진 “바지” 판사였다면 이렇게까지 난리를 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선 후보자에 대한 폭력을 멈추라

이 후보자에 대한 수구세력의 언행은 과하다. 현행법을 위반한 것도 아니고, 그 흔한 위장전입도 없지 않은가? 지방대학을 나온 여자가 헌법재판관이 되면 안되는가? 주식투자로 재산을 묻어두고 여유있게 살면 안되는가? 같은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대보라.

물론 주눅이 들었는지 후보자가 소신을 분명히 밝히지 않고, 남편에게 떠넘기는 모습은 아쉽다. 내외가 주식을 매각하겠다고 밝힌 대목도 씁쓸하다. 조폭의 매질에 못이겨 “삥”을 왕창 뜯긴 것은 아닌지. 청문회를 빙자하여 무고한 이를 꿇려놓고 무차별로 “말길질”을 해대는 모습이라니. 최소한 후보자의 인권과 재산권을 보장해주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씨에 대한 폭력을 멈추라.

인용하기: 박헌명. 2019. 국민의 눈높이와 인사청문회의 폭력. <최소주의행정학> 4(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