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You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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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전봇대와 윤석열의 전봇대 PDF


월간
 
최소주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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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중국과 인도 사이에 위치한 네팔을 다녀왔다. 수도인 카트만두는 히말라야 산맥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분지다. 공해물질이 빠져나가지 못하는지 대기오염이 심하다. 북위 27도에 걸쳐 있고 해수면에서 1,300미터나 높은 곳에 앉아 있다. 2월 초인데 낮기온이 20도를 오르내린다.

과거 궁전이었다는 더르바르 광장을 둘러보았다. 사람과 개와 비둘기가 자유롭게 거닐고 있었다. 신과 왕의 위엄은 아기자기한 조형물에서나 찾아봐야 했다. 한때는 강성한 왕국을 건설했지만, 왕실은 스스로 신망을 잃고 2008년 쫓겨났다. 면적이나 인구가 서울의 1할인 카트만두인데, 도로며 다리며 건물이며 변변한 것이 거의 없다. 잿빛 먼지를 뒤집어쓴 가로수가 하늘거린다.

각지고 구멍뚫린 전봇대

차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시나브로 전봇대에 시선이 간다. 길거리에 박혀있는 많은 전봇대들. 아무리 찾아봐도 멀쩡하게 서 있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기울어져 있다. 위태롭다.

너무나 많은 전기줄이 전봇대를 휘감고 있다. 분배기가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유선TV와 인터넷 선이 전기줄과 뒤섞여 있는 듯하다. 몇 개인지 세지도 못할 검은 줄들이 전봇대에 너저분하게 발을 걸치고 있다. 야생 원숭이 무리들이 전선을 타고 재주를 부린다. 어떤 놈은 해먹에 누운 것처럼 전기줄 다발 위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다.

이러니 전봇대가 배겨날 재간이 없다. 앞뒤 좌우로 기울고 있다. 가로등이라도 서 있으면 전선이 슬쩍 손을 얹고 있다. 한마디로 전기줄이 전봇대에 걸려있는 것인지 전봇대가 전기줄에 매달려있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기간 시설이 열악하여 전기줄을 수용하지 못하니 전봇대가 짊어져야 할 무게가 가중되는 듯하다.

콘크리트 전봇대를 자세히 살펴보니 원형 기둥이 아니었다. 단면이 직사각형이었다. 전봇대 절반은 사각형 구멍이 크게 뚫려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바람의 저항을 피하려 했던 모양이다. 각진 전봇대는 얼핏 봐도 튼튼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야를 가린다. 원형 전봇대를 만드는 기술이 부족해서였을까? 콘크리트 표면은 쉽게 삭는지 부스러지고 있다. 쇠파이프 전봇대는 녹슬어 있고, 얇은 꼭대기는 금방이라도 휘어질 듯하다.

카트만두의 도로와 대중교통

카트만두의 차도는 좁고 굽어 있고 연결성이 부족하다. 옛날 사람이 오가고, 짐승들이 몰려 다니고, 마차가 지나던 길이 연상된다. 사람과 차와 오토바이가 뒤섞여 있으니 잠시만 방심해도 사고나기 십상이다. 차도와 보도는 안전하게 분리되어 있지 않다. 폭이 1미터가 안되는 인도가 허다하다. 진흙 위에 먼지가 뽀얗게 내려 앉아 있으니 중앙선과 횡단보도를 알아보기 어렵다. 신호등은 거의 없거나 있어도 별 소용이 없다. 경찰관이 나와서 쉴새없이 손짓을 하고 있다. 눈치가 없으면 길건너는 일도 쉽지 않다. 10분이면 족할 거리를 한시간을 간다. 걷는 것이 더 빠를 것같다.

멀쩡하게 생긴 버스를 찾아보기 힘들다. 작고 오래된 버스들이 제각각인 색깔을 입고 다닌다. 공터에 마련된 터미널에서 버스들이 아무데서나 승객을 싣고 있다. 지정된 승차구역이 없으니 행선지를 어찌 구분하는지 궁금하다. 제대로 된 정류장을 찾기가 힘들다. 대중교통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실어나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 많은 오토바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흙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다.

가난해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은 평온하다. 불평보다는 웃음이다. 두려움이나 긴장보다는 여유로움이다. 젊은이와 아이들의 생동감이 이슬처럼 빛난다. 하지만 정부가 공공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다. 역대 왕들은 시민들의 고단함을 덜어주는데 골몰하거나 후손들을 위한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한 것같지 않다. 여민동락을 하지 않은 것이다. 화려한 궁궐을 짓고 정교한 탑을 쌓기 전에 도시의 큰 그림을 그리고 기반시설을 확충했어야 했다.

시민들의 의식과 요구는 저 멀리에 가 있는데, 왕과 정부는 그 기대에 못미쳤다. 그 괴리를 채우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다. 마침 지나다가 공사중인 고층 빌딩을 보았다. 첨단 유리벽으로 짓고 있는 철강건물은 굵은 통대나무를 끈으로(철사가 아닌) 묶은 안전구조물이 둘러싸고 있다. 어처구니 없는 이 부조화를 어찌해야 하나. 늘어나는 전기줄을 감당하지 못하고 위태롭게 서있는, 모나고 구멍뚫린 전봇대를 묘하게 닮았다.

윤석열의 전봇대는 안녕한가?

한국전쟁이 끝난 후 우리는 반세기 동안 폐허나 다름없는 터전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자 몸부림쳤다. 이제 세계 어디에 내놔도 모범이 될 만한 기반구조를 만들어 냈고 문재인 정부에서 선진국 반열에 우뚝 섰다. 경제, 사회, 문화, 체육 등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뤄내고 있다. 하지만 낙후된 정치와 언론 지형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왕의 무관심과 게으름과 패악질이 나라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최소한의 양식과 양심도 갖추지 못한 정권은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다. 국민의 열망을 떠받들어야 할 “정치 전봇대”가 중심을 잃고 기운다. 대책없이 친미탈중국을 외치다 균형을 잃고 탈탈 털리고 있다. 둥글고 강한 원형 기둥이 아니라 단면이 길쭉한 직사각형 말뚝을 박았다. 모난 돌이 정맞는다고 이리 저리 부딫히고 긁힌다. 비바람에 시달린다. 머리카락 다발처럼 얽히고 섥힌 당면과제를 모나고 삭은 작대기로 풀어낼 수 없다.

"정치 차도"는 진흙탕이고 안개 속이다. 세계는 전쟁같은 아귀다툼으로 우릴 옥죄오는데, 한가하게 편을 가르고 "애들 풀어서" 정적을 때려잡고 있다. 약속을 뒤집어도 변명은 커녕 적반하장이다. 이젠 누가 참인지 누가 옳은지 분별하기도 어렵다. 꼭 해야 할 것도, 절대 해서는 안되는 것도 없는 무도한 세상이다. 중앙선과 차선이 없다. 국민이 다니는 인도는 좁아지고 정치 차도에 밀려나기 일쑤다. 바퀴가 빠지고 창문이 깨진 "정치 버스"는 국민의 요구를 실어나르지 못한다. 난방비와 전기료가 폭등해도 전정권 탓만 한다. 못난 불량 버스다.

"정치 신호등"은 있는 곳이 드물고, 있어봤자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 제복입은 자가 나타나 제멋대로 호루라기를 불고 손짓을 할 뿐이다. 법과 양심良心은 밥과 앙심怏心으로 뒤바뀐지 오래다. 학생의 인턴활동은 반란죄인듯 압수수색으로 뒤지고 성인의 학력과 경력 위조는 눈감는다. 600만원 개인장학금은 뇌물이고, 50억원은 그냥 퇴직금일 뿐이다. "정치 신호등"은 권력자와 판검사 앞에서 언제나 파란불을 켠다. 그들이 타고 내리는 곳이 바로 정류장이다. 도로에 서 있는 표지판은 그들의 달리는 대로 속도와 방향을 자동으로 바꾼다. 과속이든 역주행이든 주차위반이든 그들에겐 절대 일어날 수 없다. 이것이 모칠고 천박한 전봇대 정권의 상식이고 공정이고 정의다.

이런 상황에서 진리는 각자도생이다. 승용차든 트럭이든 오토바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눈치껏 먼저 내빼는 것이 최고다. 강호에 도가 사라지니 못하는 것이 없다. 어쩌면 우리는 코로나에 너무 지친 나머지 깜빡 정신줄을 놓았던 것이다. 참지 못하고 너무 과격하게 나대다 망한 것이다. 묵묵히 잘 버텨주던 원형 전봇대를 흔들어 뽑아내고 근본없이 모나고 구멍이 숭숭 뚫린 말뚝을 박아넣었으니, 이 사달이다. Sojeong

인용: 박헌명. 2023. 네팔의 전봇대와 윤석열의 전봇대 <최소주의행정학> 8(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