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You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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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잭슨의 재림과 인사행정의 퇴화 PDF


월간
 
최소주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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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관리(personnel administration)는 조직 구성원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일이다. 유능한 인재를 채용하고, 알맞은 부서에 배치하고, 훈련시키고, 일한 성과를 평가하고, 승진을 시키고, 상벌을 주는 일이다. 인사행정(public human resources management)은 정부에서 공무원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일이다. 정부관료제는 민간기업보다 엄격하게 법과 절차를 따라야 하며 정치영향력으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인사人事는 동서고금의 상사常事지만, 현대 인사제도의 근간인 능력주의(merit system)는 고작 150년 된 역사이다. 윤정권의 용인술을 보고 있노라면 200년 전 미국의 엽관제(spoils system)가 떠오른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괴력이다.

200년 전 도입된 잭슨의 엽관제도

미국은 독립전쟁(1775-1783)에서 승리한 뒤, 1789년 조지 워싱턴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워싱턴은 공무원의 능력(competence)과 정치 중립(political neutrality)의 균형을 추구하였는데, 성실하고 공공의식이 있는 유망한 사람들을 임명하였다(Berman et al. 2020). 교육을 잘 받은 상류층이 공직을 맡는 이른바 귀족공직자(gentlemen)의 시대(1789-1829)였다. 당시 대부분이 유럽에서 밀려왔기 때문에 공직에 필요한 능력과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 드물었음이리라.

1829년 Andrew Jackson이 대통령이 되면서 공직은 선거에서 승리한 자들에게 돌아가는 전리품(spoils)이 되었다. 이른바 엽관제도(1829-1883)다. 잭슨은 연방공무원의 임기를 대통령 임기와 일치시켜 선거에서 승리한 대통령이 논공행상으로 새로 임명하는 것을 제안했다(Rosenbloom et al. 2009). 바로 오매불망 논공행상으로 한자리를 노리는 윤씨측의 숙원이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귀족이 아닌 대통령이 된 잭슨은 상류층 위주의 공직사회를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갈아 엎었다. 재능과 전문성이 결여된 중하류층 지지자들로 공직을 물갈이했다. 또 보직순환(job rotation)으로 관료제의 변화를 모색했다.

하지만 경험, 지식, 능력이 처참한 자들이 자리를 꿰차게 되면서 행정부의 공직의식, 효율성, 합리성, 성과는 추락했다(Rosenbloom et al. 2009). 낙하산, 횡령, 뇌물, 공갈로 자리를 꿰찬 자들은 선거에만 몰입했다. 공공서비스는 애초부터 관심 밖이었다. 행정과 정치질이 뒤섞였고 “politcal assessments”라는 이름으로 나랏돈이 여당으로 흘러갔다. 승자독식은 죽기살기식의 선거전쟁과 자리쟁탈전이 되었다. 1881년에는 공직을 따내지 못한 자가 Garfield 대통령을 암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금 우리가 보는, 보게 될 일들이다.

능력주의와 인사제도의 진화

미국은 1883년 Pendleton Act (Civil Service Act)를 도입하여 능력주의로 전환하였다. 신분이나 친분이 아니라 공개경쟁 시험을 통해 공무원을 채용했다. 공무원의 능력에 기반한 공직(tenure)을 보장하고 탈정치화를 지향했다. 공직자의 권위와 정당성은 정치 중립, 전문성, 기술 능력에서 나온다고 보았다(Rosenbloom et al. 2009). 또한 인사문제를 관장하는 공무원위원회(Civil Serivce Commission)를 출범시켰다. 공공서비스의 효율성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just causes”) 연방공무원을 당파를 이유로 부당하게 해고하는 것을 금지하고, 내부고발자(whistleblowers)를 보호하였다(Llod-La Follettee Act of 1912). 이후 연방공무원의 정치활동을 엄격하게 금지시켰고(Hatch Act of 1939), 균등한 고용기회를 촉진하고, 그동안 소외되었던 집단을 우대하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윤석열은 앤드류 잭슨의 재림인가?

잭슨은 이민자 집안 출신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전쟁에 휩쓸렸지만, 윤씨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대학을 졸업했다. 흙수저와 금수저 모두 법학을 공부했으나 경력과는 별개로 자질은 신통치 않았다. 판사까지 했다는 자는 잘 읽지도 못했다고 전해지고, 사시 9수를 거친 자의 소양과 언변과 태도는 민망 그 자체다. 압박 속에 자란 탓인지 고집이 세고 호전적이었다. 잭슨은 수차례 총으로 결투를 벌였고, 윤씨는 거침없이 윗전을 치받았다. 이러한 수컷스러운 과격함은 어리석은 대중을 현혹했다. 잭슨은 노예와 토지투기로 치부했고 윤씨는 처가의 불법탈법에 눈감았다. 모두 배우자의 불륜이나 줄리 접대부 문제에는 과민반응했다.

툭하면 자유를 내세운 것도 비슷하다. 잭슨은 군대를 동원하여 인디언을 학살하고 토지를 빼앗고 생존자들을 피눈물나는 길(trail of tears)로 내몰았다. 농장에서 흑인 노예를 부리며 학대했다. 법과 인권과 윤리의 굴레를 벗겨준 그만의 자유를 누린 것이다. 윤씨는 정적을 빨갱이나 범죄자로 몰았고, 노조를 불법으로 낙인찍어 탄압했다. 괴담과 가짜뉴스를 퍼뜨려 선동하는 자들이라고 매도했다. 내 편이 아니면 자유는 커녕 공민권도 없다는 잭슨식 민주주의와 윤씨의 자유민주주의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궁하면 법과 절차를 거슬러 내달렸다. 잭슨의 열렬 지지자들은 과격한 중하류 계층이었고 대부분 정식교육을 받지 못한 문맹자였다(Rosenbloom et al. 2009). “바보들의 합창”에 취한 낭만자객들의 인기영합이다.

잭슨은 임기를 시작하면서 연방공무원의 1-2할을 해고하고(patronage dismissals), 승리에 기여한 지지자들에게 그 자리를 나눠 주었다(patronage appointments). 귀족들이 차지했던 공직을 주군에 대한 충성심(moral qualities)만으로 꿰어 찼으니 얼마나 감격했을 것인가.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언감생심 하루아침에 공직자가 되었으나 일을 할 줄 몰랐다. 정파에 휩쓸려 선거에만 몰입했다. 관료제는 사달이 났다. 무지한 자의 싸구려 자기확신이 낳은 참사였다.

그런데 윤씨가 기어코 그 길로 들어섰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 아는가? 문정권에서 임명한 공공기관장을 빨갱이 사냥하듯 찍어낸다. 찔끔 남은 임기도 용납하지 못하는 품격의 빈곤함이여.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못하는 윤씨측이 알박기와 후안무치로 몰면, 수구 언론이 풍장을 치고, 검찰이 몸을 푸는 구도다. 공공서비스가 어찌 되든 말든 내 자리만 보고, 내 밥그릇만 챙길 뿐이다. 잭슨의 실정은 1835년 암살시도와 1837년 공황(panic)으로 이어졌다. 좌충우돌 윤씨의 폭주는 과연 어디로 귀결될 것인가? Sojeong

참고문헌

같이 읽기

인용: 박헌명. 2023. 앤드류 잭슨의 재림과 인사행정의 퇴화. <최소주의행정학> 8(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