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Young Lee
소정 이문영 선생님의 비판과 실천

▮비판과 실천

1960
1965
1966-폐간
1973-1974

1974

1974-1979

1974-1987
1975-1980

1975. 8. 17

1975
1976-1977
1978-1980

1979

1980-1984

1980-1982

1983. 5
1986. 3
1987. 4
1987. 8

1990. 9


4⋅19 敎授데모 참여
8⋅26 武裝軍人의 高大亂入을 抗議하는 高大敎授會의 抗議文을 본 관 앞에서 낭독
<思想界> 編輯委員
정부 압력으로 7개월 간 제 1차 해직. <民友誌>사건으로 투옥된 고대노동문제연구소 연구원 金洛中, 盧重善씨에게 봉급 을 계속 지불하고자 한 이유 때문
서울특별시장 앞으로 시정평가교수사임서를 내용증명으로 송부함. 이후 행정고시위원을 제외하고는 정부에 불협조
韓國基督者敎授協議會 會長. 이 협의회의 中央委員 거의 전원 이 정부에 의하여 교수직에서 解職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으로 있음. 단, 1985년도 인권 위원회 부위원장
越南敗亡 직후 韓神大, 延大, 高大 등에서 9인 교수를 해직시키는 조건으로 休校令을 정부가 해제함. 이로 인하여 4년 9개 월간 제 2차 해직
이해영, 문익환, 안병무, 서남동, 문동환, 이우정, 이문영 등이 돌려가며 설교하는 갈릴리 교회를 이해동 목사 시무 한빛교 회 건물에서 시작
韓國基督學生總聯盟 理事長
3⋅1 民主救國宣言 署名으로(소위 明洞事件) 1년 10개월 간 投獄
함석헌, 김대중, 윤보선이 3인 의장으로 있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의 집행위원
신민당사에서 농성중인 YH여공들에게 문동환, 고은 등과 더불어 도움을 준 것이 정부의 미움을 사 소위 YH事件으로 5 개월 간 投獄
5.⋅17구테타로 4년 4개월간 제 3차 해직. 이상 3회에 걸쳐서 9 년 8개월 간의 해직생활
소위 金大中內亂陰謀事件으로 2년 7개월 投獄. 단 제 1심구형 무기형. 이상 3회에 걸쳐서 4년 10개월 간의 영어생활
金泳三씨 단식을 계기로 단식에 들어가며 함석헌, 홍남순, 문익환, 예춘호 등과 더불어 긴급 민주선언발표. 이 때에 제 17 회 째의 연행을 당함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는 개헌 촉구선언을 고대교수 28명과 발표
4⋅13 대통령 호헌조치 반대성명을 고대교수 30명과 발표
고 유진오 고대총장의 빈소철거를 이상신, 권창은, 이만우, 윤용 교수 등과 "고대는 국정자문위원의 빈소일 수 없다"는 피킷을 들어서 요구
3김 퇴진론을 주장하는 김동길교수의 글과 이를 반대하는 글 "온갖 박해 속에 지조지킨 金大中 악한 통치세력 淨化할 인물이다"를 동시에 [週刊朝鮮]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