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Young Lee

월간
 
최소주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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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 교수가 지난 해 10월 26일 그의 트위터 방(histopian)에서 “노무현은 대통령의 권위[주의]를 없앴고, 이명박은 대통령의 도덕성을 없앴으며, 박근혜는 드디어 대통령의 자격기준을 없앴습니다”라고 적었댄다. 참으로 재치있는 독설이다. 한마디로 시체나 금치산자가 아니라면 이젠 누구라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소리 아닌가?

촛불민심은 어디로 갔는가?

이른바 “촛불대선” 혹은 “장미대선”이 끝을 향하고 있다. 박근혜씨가 탄핵을 당하여 파면된 후 60일 만에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깜깜이 선거”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후보와 그들의 공약을 꼼꼼하게 검증하기에 너무 짧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60일이 아니라 60년을 줘도 크게 달라질 것같지 않다. 관련 법과 관행은 강자의 편을 들고 시민들의 참여를 최소화하고 있다. 차라리 선거에 관심을 끊고 살라는 뜻으로 읽힌다. 아직도 종북 좌파 소리가 다른 사람도 아닌 후보자 입에서 나온다. 케케묵은 지역주의과 색깔론(반공)에 찌든 유권자들이 아직도 버티고 있다. 텔레비전 토론 방식도 요식행위에 가깝다. 시간을 초단위로 재서 후보별로 “개인기”를 보여주는 학예회 수준이다. 이번에는 규칙을 바꿔가며 토론방법을 달리하고 있지만 후보, 방송사, 시민들 모두 낯설어하고 있다.

어쨋든 우리는 열흘 안에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이번 선거에 15명의 후보가 출마하였는데 역대 대선 중 가장 많은 숫자라고 한다. 전우용교수의 말대로 자격기준이 없어서인지 박근혜 정권에 책임이 있는 자들까지 몰려들었다. “네거티브”가 아닌 정책선거를 하겠다고 했지만 결국은 말꼬리잡기, 인신공격, 안보장사, 사상검증(종북좌파), 막말로 가고 있다. 똑같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치닫고 있다.

우리는 지금 가장 나쁜 상태에 있다

한마디로 “촛불민심”은 사라지고 이전투구만 남았다. 아직도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나쁜 구세력들이 원하는 구도다. 혼란을 부추겨 “다 그 놈이 그 놈”을 만드는 것이다. 추운 겨울날 천만 촛불을 밝힌 시대정신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벌써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뜻과 고통과 공포와 인내와 열정과 감동을... 가장 나쁜 상태에 있으면서도 이를 망각하고 당장 민주주의와 평화가 온 것처럼 너무 안일한 것은 아닌지...

이문영(1991: 84-103; 1996: 368-390)은 나쁜 정권이 악화되는 단계를 창세기에 나오는 다섯 가지 설화에 빗대어 설명했다. 첫째 단계에서 정권은 말을 못하게 한다. 정권을 비판하는 지식인(대학)과 언론인과 종교인을 탄합한다.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이다. 진리를 말하는 혹은 정권이 잘했나 못했나를 판정하는 시민사회를 망가뜨리지 말고 그대로 두라는(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주권자(신, 모든 권력의 근원)의 명령을 머슴인 정권 패거리(아담과 이브와 뱀)들이 거역했다. 이명박과 박근혜씨는 한국방송공사 정연주씨를 터무니없는 트집을 잡아 내쫓고 언론사와 방송통신위원회를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채웠다. 국가정보원과 군대를 동원하여 여론을 조작하였고 시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입을 막았다.

둘째 단계에서 정치경쟁자를 죽인다. 퇴임 후에 오히려 큰 지지와 사랑을 받은 노무현씨는 전직대통령은 커녕 일반 피의자만큼도 대우받지 못하고 벼랑 끝에 내몰렸다. 이른바 “친노”라고 낙인찍힌 사람들은 말 그대로 폐족이 되었다. 창세기에서 장자인 카인이 시기심때문에 약자인 동생 아벨을 쳐죽인다. 세째 단계에서 국민 일반이 옳게 살고자 하는 의욕을 상실하고 타락한다. 개인이 나쁜 개인악이 아니라 사회 정치 구조가 나쁜 구조악이 지배한다. 이른바 사회 양극화, “묻지마 범죄”나 “갑질” 등이 구조악을 상징한다. 창세기에서는 신이 홍수를 내려 노아 식구들을 뺀 나머지를 쓸어버린다.

네째 단계는 정부가 전시효과를 노리고 큰 일을 내세운다. 한강 르네상스, 한반도 대운하, 4대강 사업과 같은 토목삽질이다. 바벨이란 도시에 세운 탑을 보고 화가 난 신이 인간의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한 것에 비유된다. 마지막 단계는 인접국가가 내정에 간섭할만큼 내부에서 통제력을 상실한다. 창세기에서 신은 구제불능인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켰다. 북한 핵실험, THAAD 도입, 일본군 성노예(위안부가 아니라) 합의, 역사를 왜곡하는 동북공정 등은 갈 데까지 간 상황을 보여준다.

후보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뽑아라

중요한 점은 이런 가장 나쁜 상태를 만들고 발전시켜 온 자들 대부분이 제대로 단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번 선거가 치러진다는것이다. 박근혜씨와 최순실씨를 비롯한 각종 미꾸라지들이 감옥에 잡혀갔지만 황교안씨를 비롯한 수많은 부역자들이 아직도 건재하다. 이승만씨가 반민특위를 해체한 일이나 박근혜씨가 세월호참사특별위원회를 뭉갠 것이나 마찬가지다. 주인없는 청와대 압수수색을 방해하고 서둘러 대통령기록물을 지정하여 이관하는 것을 보라. 국가기관이 개입한 부정선거를 덮어 잠재운 솜씨 그대로다. 이번 탄핵사태로 보수(사실은 수구기회주의자들)가 죽었다지만 사실 몇 대 쥐어터지고 몇 군데 멍이 든 정도다. “하려고만 하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라고 신이 탄식한 이유가 있다. 이번에도 상상을 벗어나는 “창조선거”를 기획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는 출마한 후보들이 “촛불민심”을 잊은 듯 서로 앞다투어 선심공약을 남발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본다. 혜택을 주고 표를 사는 “돈뿌리기”가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에 관한 얘기를 해야 한다. “나라를 나라답게”하려면 일자리와 복지 공약보다는 원칙이 되는 큰 그림(생각틀)을 보여줘야 한다. 또한 박근혜·최순실의 변태정권을 퇴출시킨 촛불민심과 시대정신을 살려내야 한다. 아직도 부역자들은 책임지기는 커녕 개헌타령이나 하고 서민 행복을 말하고 친북좌파의 집권은 막아야 한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하루빨리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백성의 뜻에 따라 나쁜 상태를 하나씩 청산해야 한다. 왜곡되고 망가진 시민사회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행정에서 합리주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은 후보나 공약이 아니라 우리의 시대정신을 뽑을 때다.

인용하기: 박헌명. 2017. 가장 나쁜 상태에서 시대정신 살려내기. <최소주의행정학> 2(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