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9일부터 25일까지 강원도 평창에서 제 23회 동계 올림픽이 열렸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미사일을 쏘아대는 바람에 과연 올림픽이 개최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전쟁위기설까지 퍼지는 와중에 선수파견을 유보하겠다는 나라도 있었다. 하지만 연초에 북한이 태도를 바꾸어 올림픽에 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하겠다고 나서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결국 92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남북 선수단은 한반도기를 내걸고 개막식에 들어섰다. 아이스하키 남북한 단일팀은 1승도 건지지 못했지만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내외신 모두 이번 동계 올림픽이 성공적이었다고 평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올림픽에 참가하는 문제를 놓고 일부 야당이 비난을 쏟아냈다. 이른바 판싸움(프레임 경쟁)를 시도한 것이다. 평창올림픽이 아니라 평양올림픽이라고 했다. 북한의 전략에 놀아나는 짓이고, 북한이 올림픽을 체제선전에 이용하도록 판을 깔아주는 짓이라고 했다.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인 나경원씨는 남북 단일팀을 구성한 일이 선수들의 출전 기회를 박탈하고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다면서 국제올림픽위원회에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개막식이나 시상식에서 태극기가 게양되지 않고 애국가가 불리지 않는다는 가짜뉴스가 나돌기도 했다. 소위 “애국세력”들의 집단저항이라는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대목이다. 이에 맞서 민주당과 소위 범여권은 평창올림픽이 남북의 긴장을 완화하고 화합으로 이끄는 평화올림픽이라고 반박했다.
평양올림픽? 평화올림픽?
먼저 씁쓸한 느낌이 든다. 기껏 해봤자 동계 올림픽이 엉망으로 끝나기를 갈망하는 자들의 심술이다. 훤히 들여다 보이는 무리수임에도 평양올림픽이라고 우격다짐을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북한에서 주최하는 것도 아니고 평양에서 경기가 벌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정작 자신은 동계올림픽을 유치해 놓고 나서 북한의 참여를 요청하지 않았던가? 어떻게든 정국을 바꾸어 선거에서 이득을 보려는 의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라의 대사까지 훼방놓는 일은 곱게 봐줄 수 없다. 한마디로 나라가 망하든 말든 자신의 잇속만 차리면 된다는 정신줄 아닌가?
다른 느낌은 긴장과 걱정이다. 이른바 촛불혁명 이후 구석에 몰린 수구세력들이 발악하는 것같다. 단순한 말싸움이나 선거전략이 아니라 과거 중정이나 안기부가 즐기던 음흉한 계략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소정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이런 공작을 설명하고 있다.
“세상이 文民統治가 아니라 軍事統治에 알맞은 말을 쓴다. … 예를 들어 부정선거라는 차원 높은 말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면 관은 선거부정이라는 문제의 핵심을 피하는 말을 잽싸게 만들어 제도 언론을 통하여 푼다” (1991: 99).
“부정선거”는 정권의 정당성에 직결되는 문제지만 “선거부정”은 작은 문제로 받아들여진다(2001: 198). 나쁜 정권은 이렇게 위기가 닥치면 음흉한 수법으로 국면을 바꿔 위기를 모면한다. 박정희씨가 1970년대 “부정부패”로 위기에 몰렸을 때 뜬금없이 “서정쇄신”을 들고 나왔고, 전두환씨는 1980년대 “사회정화위원회”를 만들어 정의사회를 구현한답시고 설치고 다녔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벌어졌던 국정원의 여론조작 사건도 마찬가지다.
“잠금”과 “감금” 사이
12월 11일 국정원 요원이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문재인 후보를 비난하는 댓글을 올리다가 야당의원들에게 발각되었다. 야당은 국가기관이 불법으로 선거에 개입한 관권선거라며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고, 국정원과 여당은 민주당원들이 여직원을 감금한 사건이라며 반발했다. 경찰은 13일에서야 여직원의 하드디스크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받았고, 16일 밤 대선토론이 끝난 뒤 경찰은 서둘러 국정원이 불법행위를 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고 중간발표를 했다. 그리고 18일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씨가 당선되었다.
당시 이명박 정권의 국정원뿐만 아니라 국국기무사령부와 국군사이버사령부도 댓글 공작을 벌였음이 최근에 확인되었다. 이명박근혜의 입장에서는 관권선거로 몰려 대통령선거를 망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던 것이다. 야당이 관권선거로 비난하고 부정선거로 거세게 몰아붙이자 새누리당은 남자들이 떼거지로 몰려가 연약한 여성을 오피스텔에 감금한 여성의 인권침해 문제로 몰아갔다. 대선토론에 나선 박근혜씨는 사건의 본질은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침해라고 말하면서 댓글을 단 증거가 없었다고 말했다. 17일 JTBC에 출연한 새누리당 권영진씨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카메라가 번쩍거리는 상황에서 여직원이 문을 걸어닫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변했다. 그에게는 여직원을 미행한 사생활 침해만 보이고 국정원의 불법행위와 관권선거는 안중에도 없었다. 어이가 없다는 듯 같이 출연한 표창원씨는 이렇게 일갈했다.
“국가 공무원이 문을 열어달라고 하고 있어요. 이 상황에서 문만 열어주면 되요. 안열여주고 잠그고 있어요. 그게 무슨 감금이에요, 잠금이지.”
관권선거와 부정선거가 인권침해 문제로 뒤바뀐 것이다. 사실확인을 거부하고 증거를 없애려는 “잠금”이 연약한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감금”이 된 것이다. 국정원, 기무사,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공작에 관한 최근 조사로 미루어 보면 당시 국민들은 벌건 대낮에 눈뜨고 날치기를 당한 것이다. 수구세력의 잔머리와 음흉함과 뻔뻔함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어쩌다 권영진 대구시장을 볼 때마다 선공후사를 내팽개치고 간사한 혀를 놀리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국민이 깨어있어야 한다
결국은 국민의 이성과 지혜와 양심에 달려있다. 요망한 말공작에 넘어가서 퍽치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깨어있어야 한다. 남북 단일팀이 되면 선수들의 출전 기회가 박탈되고 공정한 경쟁이 안된다는 사술에 넘어가면 안된다. 이것이 평창올림픽→평양올림픽→평화올림픽으로 이어지는 판싸움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다.
인용하기: 박헌명. 2018. 평창올림픽, 평양올림픽, 평화올림픽? <최소주의행정학> 3(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