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야당대표가 된 황교안씨의 첫마디는 좌파정권의 폭정에 맞서 전투를 벌이겠다는 것이었다. 종북좌파들이 독재정권을 연장하는 꼴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경원씨도 지난 3월 원내대표 연설에서 대한민국이 좌파정권 3년만에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헌정농단” 정책에 집착하고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독재정권임을 수차례 언급했다. 또 해방후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분열했다고 주장하여 “토착왜구”라거나 “황나베”라는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정치인들의 입은 특히 4.3 보궐선거를 앞두고 더 거칠어졌다. 선거지원유세에 나선 오세훈씨는 노회찬이 돈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노회찬 정신을 깎아내렸다.
종북좌파의 독재정권이라고라?
정말 문재인 정권이 종북좌파인가? 수구세력들은 정적을 빨갱이라거나 사회주의라고 낙인찍고 저주를 퍼부었다. 이승만때부터 늘 해오던 짓이다. 현 정권이 국민들의 삶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북한을 떠받드는데만 혈안이 되었다고 비아냥 거렸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이 통째로 김정은의 손에 넘어간다고도 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김정일이나 김정은의 지령을 받는 정권이었으면 공산화는 벌써 수천 번은 되었을 것이다. 친일파를 포함한 반민족세력들이 남김없이 색출되어 3족이 도륙당했을 것이다. 과연 문재인, 노무현, 김대중이 어리석고 무능한 종북좌파라서 나라를 넘기지 못한 것일까? 친일파가 누구인지 몰라서 살려둔 것일까? 좌파독재라고 저주를 퍼붓고 있지만 황씨나 나씨가 멀쩡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음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입나발이 터무니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수구세력들은 이 사실을 훤히 알면서도 교활하게도 작년에 왔던 각설이마냥 똑같은 빨갱이타령을 해댄다.
문재인 정권이 허구헌날 폭거를 저지르고 폭정을 일삼고 있는 독재체제인가? 정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처럼 포악했다면, 법도 절차도 없이 마구잡이로 “토착왜구”들을 잡아다가 형틀에 매달아 물고物故를 냈을 것 아닌가? 북한에서 벌어졌던 숙청을 따라했다면, 그들을 인민재판에 줄줄이 세워 바로 총살했을 것 아닌가? 강자에게 달라붙어 호의호식을 해온 사람들은 폭정이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해방 후 제주, 여수, 순천, 거창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억울하게 빨갱이로 죽어갔는지 듣지 못한다. 수십 년이 지난 뒤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들의 말라버린 눈물을 보지 못한다. 그런 자들이 반성은 커녕 벌건 대낮에 나와서 헌정질서를 운운하고 독재와 폭정을 입에 담고 있으니… 과거 동족을 짐승처럼 사냥했던, 빨갱이란 불도장을 현란하게 휘둘렀던 폭력와 다를 바 없는 말폭력이다. 예나 지금이나 반칙과 흉계로 권력을 탐해온 자들의 더러운 주먹질이다.
수구세력의 끝간데 없는 말폭력에 상대 정치인들은 말포화로 맞대응한다. 예컨대, 민주평화당은 반민특위에 관한 나씨에 발언에 대해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정당, 매국정당, 5.18 광주시민들을 짓밟은 전두환의 후예, 국민학살 군사독재 옹호정당”이라고 비난했다. 정의당은 오씨의 발언을 “일베 등 극우세력들이 내뱉는 배설 수준의 인신공격,” “망언이 일상화된 자유한국당색에 푹 빠져 이성이 실종된 채 망언 대열에 합류한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하지만 이런 말폭력 대응은 갈등을 수습하고 방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지한 성찰도 없는 감정싸움에 휘말릴 뿐이고,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수구세력의 음흉한 판짜기에 놀아날 뿐이다.
“노회찬에게 작별을 고하려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4월 4일자 손석희씨의 <앵커브리핑>은 고요하지만 커다란 울림을 주고 있다. 수구세력의 말폭력에 어찌 대응을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손씨는 비열한 오씨의 비난은 “차디찬 일갈”로 접어두고 노회찬에 대한 소회를 담담히 풀어갔다.
“노의원은 앞과 뒤가 같은 사람이고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이다. 그것은 진심이었습니다. ... 정치인 노회찬은 노동운동가 노회찬과 같은 사람이었고 또한 ... 휴머니스트로서의 자연인 노회찬과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파문에 파문을 낳은 오씨의 “거리낌없이 던져놓은” 그 말 때문에 역설적으로 손씨는 노회찬에 대한 규정과 재인식을 생각해 냈다고 했다. 노회찬은 부끄러워 목숨마저 버린 사람이라고 했다.
“즉, 노회찬은 돈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돈받은 사실이 끝내 부끄러워 목숨마저 버린 사람이라는 것.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비리를 지닌 사람들의 행태를 떠올린다면 우리는 세상을 등진 그의 행위를 미화할 수는 없지만 그가 가졌던 부끄러움은 존중해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그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빼버린 그 차디찬 일갈을 듣고난 뒤 마침내 도달하게 된 저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의 동갑내기 ... 노회찬에게 ... 이제야 비로소 작별을 고하려 합니다.”
손석희씨는 마무리를 하면서 두 번씩이나 10초 가량 말을 잇지 못했다. 아마도 방송을 본 많은 사람들도 마음이 무너져 목이 메었을 것이다. 노회찬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물론이려니와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선 사람들까지도 급소를 찔린 듯 꼼짝도 못하고 전율에 떨었을 것이다. 이것이 소정의 비폭력이자 최소주의다.
너무나 옳고 공감하는 말을 하기 때문에 적의 이성마저 차마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2008: 66, 89, 491, 497, 615). 수구기회주의 세력이 날조뉴스와 말폭력으로 패악질을 저지른다고 해서 똑같이 대응해서는 안된다. 폭력의 대안이 또다른 폭력일 수는 없다(1986: 290). 물론 포악한 수구세력의 주먹질에 지레 겁먹고 말도 못하고 무작정 얻어맞기만 해서도 안된다. 침묵할 것이 아니라 매를 맞으면서도 끊임없이 사실과 진실을 말해야 한다(1991: 118). 다만 말의 형식을 빌린 폭력이 되지 않게끔 조심해야 한다(1991: 322; 2001: 246). 감정을 절제하고 꼭 필요한 최소한의 말만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1996: 56). 참는다는 것은 포악함에 시달리는 사람이 갖출 덕목의 모두이며, 비폭력과 동의이다(1980: 384).
말폭력이 난무하는 요즘 진심이 담긴 탈상의 변이 오래 마음을 울리고 별처럼 빛나는 까닭이다. 우리에게 노회찬과 손석희가 귀한 까닭이다.
인용하기: 박헌명. 2019. 수구세력의 말폭력과 손석희의 비폭력. <최소주의행정학> 4(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