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Young Lee

월간
 
최소주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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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25일부터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동이 당혹스럽다. 무기력했던 “식물국회”가 다시 야성이 넘치는 “동물국회”가 되었다. 제1야당 의원들이 떼거지로 의장실에 몰려가서 남의 당의 사임과 보임을 허락하지 말라고 윽박질렀다. 여자 의원을 앞세워 육탄전을 벌였다. 새로 사법개혁특별위원으로 보임된 채이배씨를 6시간 동안 의원실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했다. 또 국회 의안과에 들이닥쳐 여야 4당이 법률안을 제출하지 못하도록 했다. 문을 잠그고 묶고 자물쇠로 채웠다. 팔을 걸고 드러눕거나 줄지어 앉거나 인간띠를 만들어 회의장을 가로막았다.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며 비장하게 애국가를 불렀고, “헌법수호”를 외쳤다. 급기야 질서유지권이 발효되고 33년 만에 경호권이 발동되었다. 오랜 기억 속에 있는 풍경이다.

박근혜의 국회선진화법이 발목을 잡다

보는 이들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은 돌아온 “동물국회”가 아니다. 난동을 벌인 자들이 70-80년대 민주화세력이 아니라 수구세력이라는 점이다. 일제식민지 이래로 친일, 반공, 학살, 냉전, 반란, 유신, 고문, 공작으로 기득권을 이어온 자들의 입에서 “헌법수호,” “독재타도,” “불법야합,” “날치기” 등이 쏟아져 나오는 황당함이다. 상전벽해라고 했던가? 쇠노루발을 들고 당직자 앞에 나선 “나빠루”는 “결사항전”이라며 기염을 토했다. 전투력으로 치면 20년 전 민주당보다 한 수 위다. 무서울 때 목숨을 걸고 산전수전을 겪은 절실함과 저어함이 없다. 그냥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 하룻강아지의 용맹일 뿐이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했던가.

민주당은 수구야당이 국회 폭력금지, 날치기 금지, 신속처리안건 지정 등을 규정한 국회법(일명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2012년 새누리당이 19대 총선거에서 과반을 얻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만든 계략아니던가. 그런데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이 이제와서 “국회선진화법”을 스스로 어기고 있다. 여야 4당이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는 일을 무력으로 훼방놓고 있다.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근혜씨가 만들었다는 “걸작”이 이제는 걸림돌이 되었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다.

포악한 자는 스스로 만든 법조차 어긴다

수구야당이 벌여놓은 난장판은 단순한 국회법 위반이 아니다. 어쩌면 최악으로 치닫는 수구세력의 운명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이문영(1986)은 포악한 통치자는 정권유지를 위해 악법까지 동원하지만 무리수를 거듭하다가 끝내는 스스로 만든 (악)법조차 지키지 않는다고 했다. 끝간데 없이 해먹다가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자초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법에 의해서 처벌할 수 없게 되면, 집권자는 스스로 그 법을 버리고 새롭게 악법을 만든다. … 마침내 그것은 더욱 진전되어 집권자는 자신이 정한 악법을 집권자 자신이 지키지 않게 된 것입니다” (340쪽).

“만일에 자신이 제정한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최악의 상황이 온다는 신호이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은 정권 스스로가 만드는 상황이다. 법은 피치자만이 지키라는 법이 아니고 통치자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법이다. 법을 통치자가 지키지 않을 때 아무도 규칙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되고 혼란이 생기며, 이 혼란은 제일 바람직하지 않는 사회현상이다. 피치자인 국민에게 주는 신호는 비록 정부가 폭력을 행사하더라도 이에 말려들지 말고 비폭력의 길을 가야 한다는 신호이다” (289쪽).

소정 선생님은 박정희나 전두환같은 통치자(집권자)와 통치자의 폭력에 신음하는 국민을 상정했다. 수구야당은 제왕적 대통령이 경찰과 검찰을 접수하고, 사법부와 헌법재판소와 언론을 장악하고, 이제는 입법부마저 노리고 있다며 악다구니를 썼다. 하지만 강자의 엄살일 뿐이다. 촛불혁명으로 청와대 권력만 바뀌었을 뿐 입법, 사법, 행정, 언론, 재벌 권력은 그대로다. 삼성에 대한 검찰 조사와 언론 보도는 이 사회를 지배해온 얼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여전히 기득권을 틀어쥔 수구세력은 적폐청산에 맞서 전방위에서 극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도 마찬가지였다. 패악질에 신음하는 것은 여전히 국민과 이성과 상식이다.

“폭력에 기반을 둔 정권은 강한 것이 아니라 허약하기 때문이다. … 자기가 정한 법도 안지키기 때문에 이른바 시민적 불복종 운동으로 지칭되는 비폭력투쟁으로 붕괴가 된다”(1986: 297).

수구야당이 스스로 만든 국회법조차 무시하고 달려든 것은 기득권 세력이 자체 분열하면서 급속하게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는 신호다. 적폐청산이 진행되면서 잇속으로 뭉쳐있던 지배 세력이 서로 등을 돌려 각자도생을 모색하고 있다. 저수지의 뚝이 금가고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위기를 직감한 수구세력이 제 분에 못이겨 “헐크”가 된 것이다. 뜬금없이 “빨갱이 투사”로 변신한 야수가 난장판을 벌이고 “자유민주주의”를 울부짖는 까닭이다. 난동과 괴성은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저 허약한 속내를 숨기려는 몸부림이다. 진심과 합리성이 빠져있으니 그 메아리가 오래 갈 수 없다.

비폭력 준법투쟁으로 난동을 진압하라

그동안 수구세력이 보여준 태도와 언행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청와대와 여당의 발목을 잡고 흠집을 내려는 계책으로 읽힌다. 국민들이 “좌파연합”을 과반으로 만들어주면 안되나? 야당이 동의한 공수처장이 어떻게 야당을 탄압하나? 대체 박근혜씨를 왜 풀어줘야 하나? 이성과 상식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과대망상이다. 총선거에 사활을 건 수구 지도부의 부질없는 사술로 보인다.

여야 4당은 이럴 때일수록 더 철저하게 비폭력으로 대응해야 한다. “괴물국회”도 이제 끝물이니 마지막까지 참고 견뎌야 한다. 국민의 눈과 상식에 맞는 비폭력 준법투쟁으로 괴수의 발악을 진압해야 한다.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수구세력의 자해공갈에 말려들지 않도록 긴장하고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시민사회도 냉철하게 잘잘못을 따지고 처절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때늦은 벚꽃이 서늘한 봄비에 맞아 화사하게 지는 날이다. 총선이 다가온다.

인용하기: 박헌명. 2019. 동물국회, 식물국회, 그리고 괴물국회. <최소주의행정학> 4(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