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Young Lee

월간
 
최소주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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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우연한 기회에 일본 소니 회장을 역임한 분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과거 1990년대까지만 해도 천하를 호령했던 “소니왕조”가 어떻게 몰락해 왔는지를 경영자 시각에서 회고했다. 문득 난생 처음으로 소니 워크맨(Walkman)을 사서 산으로 들로 다녔던 90년대 중반을 떠올렸다. 오토리버스 기능에 흡족해 하면서 이승환의 <천일동안>을 테이프가 닳도록 들었던 군대시절이다.

소니의 몰락은 앞선 일본 민주주의 때문?

연사는 소니가 시장의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덩치가 커서 쉽게 움직이기 어려웠다고 했다. 지금까지 해오던 것을 바꾸기 싫어하는 일본인들의 정서도 지적했다. 국제화를 위해 해외지사로 발령을 내면 직원들은 좋아하기는 커녕 좌천된 사람처럼 사표를 냈다고 했다. 그런데 강연이 끝날 무렵 노신사는 불쑥 삼성과 LG 이야기를 꺼냈다.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여서 소니가 각종 법규를 준수하느라 힘을 소진했지만, 한국은 민주주의가 허술해서 삼성과 LG가 법질서에 신경쓰지 않고 시장에만 집중했댄다. 정부 규제에 손발이 묶인 소니가 불법과 탈법을 넘나들며 활개치는 삼성과 LG와 경쟁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소니의 몰락을 이렇게 풀어낸 것이 흥미롭긴 했지만 솔직히 나는 어이가 없어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이명박근혜 시절이라지만 이런 소리를 들으니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이씨왕조"를 위한 삼성의 뒤집기

그런데 그 노신사의 말이 그저 터무니없는 낭설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점점 하게 되었다. 1996년 삼성 이건희씨가 아들 이재용씨에게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편법으로 증여했다는 사건부터 2016년 이건희씨의 성매수 사건과 최근 이부진 이재용 남매의 프로포폴 상습투약 사건까지 복기해 보면 공화국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이씨왕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씨들에게 헌법과 법률은 있으나 마나한 것이었다. 그들이 못할 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그 누구도 감히 토달지 못한다는 “쩐”의 자신감이 묻어난다. 삼성은 이씨들이 싸질러놓은 일이 무엇이든 묵묵히 뒷치닥거리하는 머슴이었다. 누가 봐도 불법이고 탈법이고 구역질나는 일을 합법으로 세탁하는 “뒤집기”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2005년 이상호 기자의 “삼성 X파일” 폭로와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는 엉뚱하게도 제보자의 실형과 노회찬씨의 의원직 박탈로 막을 내렸다.

나는 2007년 삼성중공업 선박이 태안에서 일으킨 기름유출 사고를 보면서 삼성의 호도질과 무책임에 절망했다. 2016년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삼성 이씨왕조”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았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삼성전자에 지분이 없던 이재용이 경영권을 물려받기 위해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무리하게 합병하였다. 에버랜드 토지가치가 높게 매겨지고 실체없는 제일모직 바이오사업부의 가치가 과대평가되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가 회계기준을 바꾸어 자본잠식을 감추었고, 자회사인 바이오에피스에 대한 미국 바이오젠의 콜옵션을 숨겼다. 합병에 꼭 필요한 국민연금의 동의를 얻기 위해 박근혜의 탈을 쓴 최순실에게 말이며 돈을 건넸다. 또 대놓고 검찰의 조사를 방해하고 증거를 인멸했다. 2019년 삼바는 공장바닥에 회계에 관련된 서버와 랩탑을 숨겨 세상을 경악시켰다. 중정과 안기부의 패악질이 삼성의 미전실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삼성의 뒤집기는 약발이 여전하다. 지난 6월 26일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는 이재용에 대한 불기소와 수사중단을 결정했다. 이씨가 아니라면 벌써 수십 번은 구속되고 수십 년을 감옥에 있어야 할 죄가 아닌가.

이씨왕조의 죄악과 삼성장학생의 추억

소정 선생님은 <창세기>의 5대 설화를 통해 악은 (1) 언론 탄압(말을 못하게 한다), (2) 정치경쟁자 제거, (3) 일반 국민의 타락, (4) 전시효과를 노린 사업 추진, (5) 체제 비대화와 인접 국가의 정벌로 진전된다고 했다(1991: 87-103). 삼성왕국이 걷고 있는 그 길이다.

첫째, 이씨와 삼성을 비판하는 일이 힘들거나 위험하다. 삼성은 영향력이 있는 정치인, 언론인, 판사, 검사, 관료, 변호사 등을 관리해왔다. 삼성의 눈에 거슬리는 기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양들의 침묵이다. 삼바수사가 한창일 때 검찰과 언론은 “조국때리기”로 국면을 바꾸었다. 이건희의 성매수 촬영죄만 묻고 이재용의 프로포폴 제보자만 구속하였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암약하는 “삼성장학생”들의 활약상이다. 둘째, 유독 실적과 1등에 집착해서 경쟁 기업이 남아나질 않는다. 기술이 좋아서가 아니라 수단방법 안가리고 힘으로 경쟁자를 찍어 눌렀다. 규모의 경제를 넘어선 그냥 강자 물량공세와 갑질이다. 소니 회장의 지적이 아픈 대목이다. 세째, 이씨들이 무슨 짓을 해도 일반 시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기사, 방송, 조사, 기소, 판결이 쏟아진다. 사람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며 옳게 살고자 하는 의욕을 상실한다. 힘의 논리를 날것 그대로 체득하여 누구든 약자에게 행패를 부린다. 네째, 임직원들이 작정을 하고 노조를 망가뜨리고 공장에서 병을 얻은 직원들을 십 수년 방치했음에도 세계 1위도 모자라 “초인류 경영”이라면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한다.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주술을 퍼뜨린다. 바벨탑이다. 이씨들이 감옥에 있을 때 삼성의 주가가 오르는데도 나라와 경제를 위해 석방하고 사면해야 한댄다. 나라가 정말 그 지경이면 그 나라는 진작 망했어야 한다. 다섯째, 뒷치닥거리 비용이 커지고, 혁신은 시들고, 시장은 돌아선다. “삼성이 만들면 안산다.” 그동안 밟혀왔던 다른 기업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한마디로 권력이 금력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과거 왕조와는 달리 총과 칼이 아니라 돈다발을 들이밀고 복종을 강제하고 있다. 주군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호위무사의 기개일까? 상식과 양심을 팔아넘긴 비루한 인간의 궁상일까? 삼성장학생의 뒤집기가 사람들의 한숨이 되고 분노가 되고 저주가 되고 있다. 노아의 홍수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부르고 있다. 소니가 시장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처럼 삼성도 세상물정 모르고 짜릿한 뒤집기에만 취해있는 것은 아닌지. 깨어있는 시민들이 해일이 되어 밀려오고 있다. Sojeong

인용하기: 박헌명. 2020. 소니왕조의 몰락과 삼성왕조의 위기. <최소주의행정학> 5(7): 1.

2020. 08. 19 마지막 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