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Young Lee

월간
 
최소주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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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자로 된 고사성어가 정치인의 입에 오르는 일은 흔하다. 양반의 품격과 학식은 사자성어로 완성된다고 믿는 것일까? 일부러 투박한 영국식 발음과 라틴어를 고집하는 미국인의 현학이랄까. 물론 꼭 맞는 비유여서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열이면 아홉 이상은 돈주고 족보를 산 양반네들의 싸구려 에헴이다. 고개가 갸우뚱 하다가 손발이 오그라들고 닭살이 돋는다. 조미료가 듬뿍 든 음식을 털어넣은 듯 속이 거북하다. 도포 차림으로 공자왈 맹자왈만 하면 무얼 하는가. 사실도 아닌 일을 어설픈 비유로 힐난해놓고 스스로 대견해하는 모습이라니. 귀여운 구석조차 없는 몹쓸 "아재개그"다. 적개심이 지나쳐 정신줄을 놓은 꼰대들의 작태다. 언어에 대한 테러다.

"추안무치"와 "주안무치"

지난 2일 야당의 원내대표인 주호영씨는 추장관 아들의 병가 의혹을 이어가면서 "한마디로 추안무치"라고 일갈했다. 제 딴에는 후안무치厚顔無恥에서 기가막힌 운율을 따냈다고 생각했을까? 주씨가 추앙하는 윤석열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사건 아닌가. 그래도 죽은 자식 불알만지기인가?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조차 속이려는 몸부림일까?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니 주안무치酒顔無恥 아닌가?

비유 수준을 기하학의 차원에 빗대어 보자. 점은 0차원으로 표현된다. 점을 이은 선은 1차원이고, 가로와 세로로 구성된 평면은 2차원이며, 높이가 더해진 입체는 3차원이다. 대상에 대한 설명은 0차원이라 할 수 있고, 단순 비교는 1차원("너는 나의 봄"), 공간과 시간 비교는 2차원("한국의 제갈량")이다. 말하고 듣는 멋은 3차원의 축이다. 강물처럼 자연스레 흐르고 숲처럼 아름다운 비유를 말한다.

"추안무치"는 0차원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멋과 감동은 커녕 부실하기 짝없는 설명이다. 그냥 말장난이다. 철부지의 "너 시러" 수준이다. 중국 고사를 빌어오고 나름의 운율을 넣었지만, 사실이 아닌 것을 어거지로 비틀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나라를 돌보지 않아 빼앗긴 일과 병사가 병가를 얻은 것(설령 탈영이었다 해도)을 병치시킨대서야... 그저 비난과 저주를 담은 막말을 "아재개그"로 치장했을 뿐이다. 조국을 조롱하는 "조로남불"도 오십보 백보다. 전방위로 조장관의 삼족을 탈탈 털었지만 검찰은 아직도 그의 불법행위를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언론이 어마어마하게 쏟아낸 "가족사기단" "조국펀드" "위장이혼" "표창장 위조"는 도대체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지금까지 명백히 드러난 것은 최성해의 가짜 학위와 검찰개혁의 당위성 뿐이다.

<달의 몰락>과 자기기만

작년 수구세력이 김현철의 <달의 몰락>을 끌어들여 문대통령을 비난했다. 황교안씨와 나경원씨가 주도한 자유한국당의 장외집회에서 틀었다는 노래다. 설화舌禍에 휘말린 청와대 비서관 이름이 가수 이름과 같다는 이유로 달의 영어발음인 문(Moon)을 엮어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노래가 무엇을 말하는지 황씨와 나씨는 알고는 있었을까? 멋과 미추美醜와는 담을 쌓은 자들이다. 자신에게 칭찬인지 저주인지 분간을 못하는 천둥벌거숭이들의 어리석음이여... 문재인이 실제 몰락하는 상상이라도 하는지, <달의 몰락>을 들으며(부르진 못하고) 낄낄대는 순진무구함이여... 자학개그다.

자신(수구세력)을 "처음 만났을 때도" "무참히 차버릴 때도" 자신이 짝사랑하는 그녀(국민)는 "탐스럽고 이쁜" 달(문재인)이 좋다는 것 아닌가. 자신과 "매일 만날 때에도" "완전히 끝난 후에도" 그녀는 오매불망 달을 사랑한다는 것 아닌가? 자신은 죽었다 깨나도 그녀에게 눈길 한번 받지 못하고 무참하게 채인다는 것 아닌가? 그녀의 일편단심에 상처받고 질투심과 좌절감에 사로잡혀 연적에게 고약한 주술을 걸고 있다. 제발이지 눈앞에서 사라지든가 죽어나 버려라. 아니 달이 정말로 몰락하는 환영이 보이고 이제 그녀는 내 것이라는 통쾌한 상상이다. 현실도피이자 자기기만이다.

과연 그 저주가 약발이 있었던 모양이다. 작년 "조국대전"이나 올해 "황제휴가"를 통해서 수구 기득권 세력이 사생결단으로 덤벼들었지만, "탐스럽고 이쁜" 달을 좋아하는 그녀의 마음은 한결같으니 말이다. 아무리 파상공격으로 흔들어 대도 문대통령의 지지율이 4할 밑으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 역대 최고치라고 한다.

계몽군주와 식자우환

지난 달 25일 열린 10.4 남북정상선언 기념 토론회에서 유시민 이사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빗대어 "계몽군주"라고 표현했다. 시공간을 가로지른 그의 비유는 여러 가지 느낌을 담고 있다. 옛날처럼 해서는 살아남기 어렵겠지, 권력유지를 위해서 어쩔 수 없겠지, 계속 그렇게 해주라(철부지 아이를 지긋이 타이르는 꼬드김이랄까), 그래도 왕은 왕이다 등... 수구세력들은 폭군을 칭송한 요설이라고 비난했다. 맥락도 빼고 배경 지식도 빼고 막무가내로 빨갱이칠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단장취의 신공이다. 화자는 가벼운 비틀기로 멋을 냈는데 청자는 문자를 트집잡아 죽기살기로 달려들고 있으니...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했거늘. 이런 식이면 양상군자梁上君子는 도둑을 고무·찬양한 발언인가? 유이사장은 (수구세력들에게) 너무 고급스러운 비유를 했다며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고 했다. 0차원도 버거운 자들이 어찌 3차원의 입체감을 알겠는가.

"추안무치"나 "조로남불"이나 수준 미달이다. 정신 건강을 해치는 말고문이다. 폭행에 가까운 말폭력이다. 이런 문화·예술 테러는 대개 수구 기득권 세력의 몫이다. 배운 게 없어서가 아니다. 간절하게 땀흘리고 피흘리고 눈물을 떨구고 기쁨을 나눠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희노애락을 예쁜 꽃으로 그려내고 멋진 가락으로 뽑아낼 수 없는 사람들이다. 정오차의 <바위돌>을 금지시키고, 이창동의 <시>를 낙제시킨 자들이다. 그동안 완장을 차고 모든 것을 맘대로 주물러왔기에 자신의 특권(반칙)을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이 낯설고 원망스럽다. 기가 막히다고 확신한 비유가 전혀 먹히지 않는 현실이 서럽고 화난다. 기득권 놀음에 빠져 스스로 퇴화된 줄도 몰랐던 것이다. "말의 형식을 빌린 폭력"(1991: 322)이 소음이 되고 악취가 되고 흉기가 되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Sojeong

인용하기: 박헌명. 2020. "추안무치"와 <달의 몰락>과 계몽군주. <최소주의행정학> 5(10): 1.

2020. 10. 14 마지막 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