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Young Lee

월간
 
최소주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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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26일 지난 해 실질국내총생산(GDP)이 1%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수구언론은 일제히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을 했다고 제목을 달았다. 엄청난 재앙이나 실정이 일어난 느낌이다. 역시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허무맹랑한 짓이었다는 평을 덧붙였다. 지난 해 거의 모든 나라가 COVID-19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은 비껴간다. 한국보다 재정을 몇 곱절 쏟아붓고도 역성장 폭이 더 큰 나라 얘기는 얼버무린다. IMF 추정치로 말하자면 미국은 세계 평균에 가까운 -4%, 일본은 -5%, 영국은 -10%이다. 도대체 뭐가 불만일까? 문재인 독재정권이 폭주하고 소득주도성장이 실패했다고 몰아붙였는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온 것이 화나고 당혹스러운 것일까?

이 나라가 기재부 나라냐?

정치권이 추진하고 있는 COVID-19 손실보상제도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료들이 난색을 표하거나 미적거리자 국무총리가 21일 중앙재난안전대책회의에서 “이 나라가 기재부 나라냐?”고 일갈했다. 홍남기 장관은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며, 국가채무가 빠르게 늘어가고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랏빚을 걱정하고 재정건전성을 따져야 하는 곡간지기의 입장이다. 수구야당은 손실보상에 반대하지 않지만 선거에 이용하면 안된다는 입장이다. 제도화보다는 대통령의 긴급명령으로 선거 전에 빨리 지급하거나 한참 지나서 연말 쯤 추진하랜다. 전 국민에게 넓게 지원할 지, 피해가 심한 국민들에게 두텁게 지원할지, 작년까지 소급해서 지원할 지를 두고 옥신각신 하고 있다. 돈을 쓰려는 자와 돈을 쥐고 지키려는 자의 시각과 논리와 이해가 서로 엇갈리고 있다(Boardman, Vining, & Waters, 1993). 이러한 논란 속에 지난 1년 동안 방역에 동참하느라 생업이 망가지고 일상이 어그러진 서민들의 시름은 하루하루 깊어만 간다.

방역상식과 시민의식이 판을 갈랐다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보다 COVID-19와 경제 위기에서 선방했다. 이른바 K-방역의 성과다. 정부는 과학과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치밀하고 과감하고 전략적으로 대처했다. 상식에서 벗어난 정치인의 선호와 이해에 따라 방역이 흔들리지 않았다. 강제성이 지나치고 개인정보(위치나 거래 정보)를 과도하게 사용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방역과 경제의 균형을 지향한 덕분에 국경이나 도시를 폐쇄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또한 대다수 시민들이 정부의 방역지침을 적극적으로 따랐다. 스스로 가게와 골목을 소독하고 쓸고 닦았다. 서로를 위해 마스크를 쓰고 개인간 거리를 지켰다. 산발적 일탈은 있었지만 마스크를 쓰기 싫다며 집단으로 난동을 부리지 않았다. 중국에서 탈출한 교민들이 격리시설에 수용되었을 때도 심각한 충돌을 벌어지지 않았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백성이 나섰던 것처럼 이번에도 공동체와 이웃을 지키려는 시민의식이 빛을 발했다. 우리 공동체의 소중한 전통이자 자산이다.

방역이란 공공재는 공동체가 만든다

전염병과 싸우는 방역防疫은 공공재(public goods)다.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국방과 마찬가지다. 누가 혜택을 독점할 수도, 누구를 배재할 수도 없다. 방역이나 국방에 기여하지 않고 그 혜택만 누리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바이러스는 무색 무취여서 누구에게 옮겨왔는지 누구에게 전염시킸는지 그때그때 가려내기 어렵다. 어쩌면 COVID-19은 무임승차(free riding)와 외부성(externality)을 노린 지능범인지 모른다. 개인이 아무리 방역수칙을 잘 준수한다 해도 공동체의 협조가 없다면 자신을 지킬 수가 없다. 말하자면, 방역은 공무원과 의사와 간호사만의 일이 아니다.

방역활동에 동참하는 일은 군대에 자원하거나 의병으로 싸우는 일과 마찬가지다. 방역지침을 지키고 생활수칙을 따르는 일은 자신이 숙주가 되지 않음으로써 바이러스 증식을 막는 행위다. 전쟁으로 치면 물자(군비)나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다. 재택근무를 하고 영업시간을 줄이고 개인 간 모임을 자제하는 것은 경제활동과 사회활동을 통한 접촉을 줄여 감염 가능성을 낮추는 일이다. 장사를 제대로 못하고 일상의 불편함을 감수함으로써 공공재(방역)를 생산한 것이다. 백신과 치료제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정부의 방침을 따르고 생활수칙을 준수하는 일이 방역이다. 국민이 감내한 손실과 고통은 당연한 의무가 아니다. 공동체를 살리기 위한 배려와 실천과 희생이다.

공동체를 망각한 무리들의 패악질

어느 사회나 공동체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자들이 있다. 종교와 이념을 빙자하여 정부와 시민들의 방역을 무리지어 헐뜯고 방해하는 자들이다. 이기심에 찌든 망상과 망동이 방역의 중요한 길목마다 찬물을 끼얹었다. 사회의 암종이고 국민의 짐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확진자 세 명중 1명은 신천지예수교, 사랑제일교회, 인터콥 BTJ센터, IM선교회 등에서 감염되었다. 방역지침과 수칙을 무시하고 그들만의 믿음에만 집착했다. 휴대폰을 꺼놓고, 거짓으로 동선을 알리고, 진단검사를 거부하였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개인간 거리도 지키지 않았다. 전세계 구석구석까지 선교를 하듯 COVID-19의 저변 확산에 목숨을 건 듯한 기세다. 문정권을 독재와 신적폐로 낙인찍고 무조건 반대와 저주를 일삼은 집단도 마찬가지다. 주관적인 의심과 바람을 객관적 사실로 뒤바꾸고 일을 저지르는 확신범이다. 이 두 부류가 합작한 작품이 지난 해 광복절 광화문 집회다. 전국에 바이러스를 퍼뜨려 방역에 재를 뿌렸다. 그들에게 과학과 상식은 악마의 속삭임이다. 그들에게 공동체란 그들 자신일 뿐이다. 일반 시민은 없다. 그동안 힘겹게 참아온 시민들이 분노하는 까닭이다. 만일 예수가 살아온다면 돌팔매질을 당하고 다시 십자가에 못박혀 매달려야 할 판이다.

시민의 협조와 희생에 보답하라

정부는 이미 3차에 걸쳐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처음에는 모든 국민에게 10만원씩 주었고, 2차와 3차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위주로 피해 정도에 따라 300만원까지 지급했다. 일본정부가 개인에게 10만엔(110만원)씩 지급한 것에 비하면 소액이지만 서민들에게는 그런대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지원금은 정부가 국민에게 시혜를 베푸는 차원이다. 방역에 참여하고 협조한 시민의 몫에 대한 보답이 아니다. 방역이 공공재이며, 시민이 공공재를 생산하는데 기여했음을 인식해야 한다. 가게문을 일찍 닫고 외출을 자제하고 거리두기하는 것 자체가 방역이다. 시민의 협조와 희생이 K-방역의 한 축이다. 그 손해와 불편은 홍수나 태풍으로 입은 피해와 전혀 다르다. 정부의 손실보상은 이런 인식에서 출발하여 구성원들이 서로 고통을 나누고 노고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손실보다는 기여로 따져야

정부의 보상은 피해를 입은 정도를 따지기보다는 방역에 기여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방역지침을 어기고 방역수칙을 무시하여 타인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보상에서 일단 제외해야 한다. 그들의 경제활동이나 사회활동은 사익을 위해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무임승차자에게는 보상이 아니라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환기해줘야 한다.

정부의 방역지침에 협조하느라 사회활동(일상의 자유)를 자제한 것은 모두가 같은 보답을 받아야 한다. 경제활동이 제약되어 손실을 입은 경우라면 대상과 규모를 잘 따져봐야 한다. 예컨대, 공공기관과 대기업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은 대상이 될 수 없다. 손실 규모는 2019년 납부한 세금으로 추정하여 계산하면 될 것이다. 모든 손실을 보상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먹고 살기 위해서 방역 수칙을 어길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으로 내몰아서는 안된다.

이 나라는 기재부의 나라도 아니지만 정치인의 나라도 아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시각에서 정치인은 유쾌한 상상을 하고, 기재부는 곡간지기의 소임을 다하면 그만이다. 전대미문의 위기상황에서 경제이론과 재정건전성은 금과옥조가 될 수 없다.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마당에 국가부채만 붙잡아놓는 것이 상책은 아니다. 소득주도성장이 아니어도 시민들이 협조하고 희생한 몫에 대하여 정당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 일단은 살고 봐야 할 것 아닌가. Sojeong

참고문헌

인용하기: 박헌명. 2021. 방역이란 공공재는 공동체가 만든다. <최소주의행정학> 6(2): 1-2.

2021. 02. 02 마지막 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