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Young Lee

제왕적 당선인의 중방정치와 도방정치 PDF


월간
 
최소주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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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대선에서 간발의 차이로 패했다. “아무리 그래도...”라며 기대를 걸었지만 격앙된 민심을 이기지 못했다. 현실과 거리를 둔 이상의 한계일까? 상처가 아무는 고비의 고통을 참아내지 못한 백성의 어리석음일까? 원한과 저주를 양분삼아 집요하게 물어뜯은 수구세력의 힘일까? 이렇게 촛불시민이 퇴화하는가?

광화문이든 용산이든 국민이 결정한다

청와대를 해체하고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던 윤석열 당선인이 드닷없이 그 공약은 재앙이라며 용산 시대를 선언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국방부는 급하게 이사할 곳을 찾아야 했다. 선거 후 1주일 안에 국민의당과 통합하겠다는 약속은 이미 물건너 갔다. 아마도 윤씨는 집권을 하더라도 똑같은 행태를 반복할 것이다. 공약과는 무관하게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내키는 대로 토론이나 설명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 법무부 폐지, 공수처 폐지 등을 통보할 것이다.

나는 의아했다.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는 것이 그리 중대한 일인가? 정치, 경제, 사회, 국방, 보건 등 나라 안팎으로 근심거리가 넘쳐나고 북한이 미사일까지 쏘는 마당에... 또 집무실을 당선자가 마음대로 옮길 수 있단 말인가? 청와대가 개인 소유인가?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는 것이 그저 보따리 몇 개 싸들고 전세방 얻어 이사하는 일이던가? 충분한 논의와 동의를 거쳐 결정할 일을 시한을 못박고 밀어붙이다니... 윤씨가 용산을 점찍은 것처럼 다음 당선자가 지방분권을 한다며 대전으로 간다면 어찌 하려는가? 환경과 관광을 생각해서 설악산으로, 바다를 사랑하여 흑산도로 집무실을 옮긴다면 어떠한가? 그 비용이 천억이든 1조원이든 그리 쓰는 것이 합당한가? 만일 새로운 도지사, 시장, 구청장이 들어설 때마다 취향에 따라 집무실과 청사를 새로 옮기고 짓는다면 어떠한가? 윤씨가 하면 괜찮은데 다른 사람이 하면 안되는 일인가? 공사구분을 못하는 정신줄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제왕적 당선인제?

윤씨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끝내기 위해 청와대를 해체하겠다고 했다. 사실 광화문이든 용산이든 세종이든 뜻을 모아 잘 준비해서 옮기면 그만이다. 그런데 “제왕적 대통령제”라니, 도대체 그 근거가 무엇인가? 헌법이나 법령에 못박혀 있단 말인가? 제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왕정시절에 머물러 있는 백성들과 정치인들이 문제가 아닌가? 더구나 잘못된 관행이 사람이 아닌 청와대라는 장소 때문이라는 발상은 황당하다. 이런 속설이 있다 해도 어찌 점괘같은 인과설을 입에 담는단 말인가. 과학인가? 미신인가? 아니면 취중객기인가? 청와대로 가는 순간 제왕적 대통령으로 찌들린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삐뚤어졌기 때문이다. 어디에 있든 깨진 바가지는 물이 샐 뿐이다. 만일 바이든 대통령이 미제국주의를 청산한다며 백악관을 해체하고 두 달 안에 하와이 군부대로 집무실을 옮긴다면 어떻게 될까? 명분이나 비용과는 별개로 방법과 과정이 전혀 터무니없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종식시키겠다는 윤씨의 언행 자체가 제왕적이다. 기세로 보면 영락없이 황제나 상제上帝다. 언제 국민이 윤씨에게 용산으로 낙점할 권한을 주었단 말인가? 경우없는 짓이다. 개념없는 “제왕적 당선인제”의 폐해가 너무도 크다.

무인정권의 중방정치나 도방정치다

이런 어이없는 소동을 보면서 나는 문득 고려시대 무인정권을 떠올렸다. 고려왕조는 당대 최강국인 몽고를 비롯하여 여진족(금나라)과 거란족(요나라)의 부침 앞에 풍전등화였다. COVID-19,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 미사일 발사 등을 둘러싼 4대강국의 이해관계에 직면한 오늘과 비슷하다. 승패에 매달려 창칼을 휘두르는 무인과 죽기살기로 막말을 쏟아내는 정치꾼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무신의 위세에 짓눌려 허수아비가 되었던 고려황제는 정치꾼의 요설에 휘둘리는 정치(제도로서 정치체제)와 닮았다. 소위 합하閤下에게 등용된 문신관료와 수구세력에게 눈이 맞취진 언론은 묘하게 겹친다. 무자비한 살상과 말폭력을 자제하고 명분과 민생을 살피는 무신과 정치인이 살아남기 어려운 판이다.

의종을 폐하고 명종을 세운 이의방과 정중부는 정부관료제를 무시하고 무신 지휘관 모임인 중방重房에서 국사를 좌지우지했다. 무신과 거리를 두었던 경대승은 신변경호를 위한 사병조직인 도방都房에서 권력을 행사했다. 중방은 정규군이지만 도방은 사병이다. 경대승이 죽자 이의민은 다시 중방에서 권력을 휘둘렀다. 최충헌은 도방을 부활하고 최고정치기관인 교정도감을 설치하여 자손에게 물려주었다. 그의 아들 최우는 30년 동안이나 정방政房에서 인사권을 쥐고 흔들었다. 중방, 도방, 정방 모두 정규관료제(예컨대, 중서문하성,상서성, 중추원, 도당) 위에 군림한 최고의결기관이었다. 합하와 무신들은 황제의 뜻과 상관없이 마음대로 결정을 내렸다. 이렇게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고려왕조는 100년 동안 내우외환에 허덕이다 서서히 무너져 갔다.

주목해야 할 점은 윤씨와 수구세력이 문재인 정부를 대하는 태도다. 노무현을 주저앉힌 방식 그대로 원한과 저주를 만들고 부풀려 공격한다는 점이다. 노씨와 문씨는 이미 악마가 되었다. 울분에 찬 무신들이 문신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은 것처럼... 합리성이 아닌 증오와 광기다. 국방부를 흔들어 군기를 잡는다 해도 윤씨의 의심과 불안은 계속될 것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또다시 푸닥거리를 할 것이다. 믿는 것은 칼잡이 부하들이니 “중방”을 버리고 서초동에 가서 “도방”을 설치하고 “정방”을 운영할 것이다. 정부관료제는 도방에서 보낸 검사들에게 장악되어 공무원들은 부역자 신세가 될 것이다. 윤씨 내외의 심기를 위무慰撫하는 자들이 완장차고 설칠 것이다. 어쩌면 마법같은 불력佛力으로 난관을 극복한다며 법사들을 불러다 “건만대장경”을 새길는지도 모른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이 소중한 줄을 알아야 한다. 창칼과 주먹이 아닌 말과 눈빛으로 대화하고 설득할 수 있는 문신이다. 흠이 있더라도 그들의 인내와 땀과 꿈을 기억하고 지켜줘야 한다. 폭력과 무명과 주술에서 이성과 상식을 회복하는 길이다. Sojeong

같이 읽기

인용: 박헌명. 2022. 제왕적 당선인의 중방정치와 도방정치. <최소주의행정학> 7(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