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아이들에게 서울은 초행이다. 서울의 모든 것이 낯선 모양이다. 생각보다 근사한 건물에 많은 전시물을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지금까지 다른 나라 중앙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우리 박물관은 어떠한지 궁금했었다. 이제는 K-pop Demon Hunters 바람을 타고 많은 외국인들이 중앙박물관에 줄을 선다고 하니 놀랍다. 막내 뒤를 따라 다니느라 고생을 했지만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의궤儀軌, 고려청자가 기억에 남았다.
굳이 "먹거리"라고 써야 했나?
벽면을 돌고 돌아 전시물을 구경하다가 문득 어떤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먹거리.” 몹시 거슬리는 말이다. 전시 내용은 당시에 어떠한 음식을 먹고 살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어서 “음식”이나 “먹을거리”로 적어야 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먹거리”를 사용한다고 해도 호불호가 없는 정확한 말을 사용하지 않은 것을 납득할 수 없다. 구태여 어법에 맞지 않은 말을 써서 분란을 자초할 필요가 있을까? 하물며 한 나라의 역사와 전통을 기록하고 있는 중앙박물관임에랴.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먹을거리는 “머글꺼리”로 읽고 “먹을 수 있거나 먹을 만한 음식 또는 식품”이라고 정의했다. 먹거리는 “먹꺼리”로 읽고 “사람이 살아가기 위하여 먹는 온갖 것”이라고 했다. 전자는 재료를 후자는 조리된 상태(그래서 바로 먹을 수 있는)를 강조한다는 설도 있지만 대체 무슨 차이가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먹거리”를 음식이나 먹을거리로 바꾸면 의미가 달라지기라도 하나? 어쩌면 “먹거리”가 먹을거리의 준말로 전라도에서 사용하던 방언인데, 한자인 음식과 영어인 food에 해당하는 우리말을 서둘러 찾다가 그리되었다는 설명이 더 그럴 듯하다.
어쨋거나 분명한 것은 “먹을거리”는 이견이 없는 표준말이고 그 뜻은 음식이나 식품이다. 둘째, 먹다에서 파생되었을 “먹거리”는 실수나 착오로 만들어진 말이며 우리말 어법을 파괴하고 있다. 세째, 말을 멋대로 줄여서 사용하려는 세태에 부합하는 말로 재미를 핑계로 어법을 뭉개고 있다. 국립국어연구원의 정희찬의 말대로 food에 해당하는 말로 “먹을거리”를 생각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근본없는 말을 생각없이 재미로 하나 둘 하다보니 어느 순간 사람들이 헷갈리게 되었다. 2011년에는 “먹거리”가 표준어 대열에 올라섰다.
먹거리? 묵거리? 스킨쉽?
애들은 그렇다 쳐도 장난질한 말을 표준어로 지정한 국립어학원의 처사가 황당하다. 어이없는 일이다. 정확한 말이 있음을 알려주고 왜 “먹거리”가 잘못되었는지를 설명해주었어야 했다. 어리석은 자들이 다수여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았어야 했다. 국가기관으로서 말법과 어법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조치다. 필요하면 표준국어사전이 아닌 유행어사전 같은 것을 만들어 어법과 무관하게 쓰이는 말을 적어놓을 수도 있었다(흔히 많이 사용하는 skinship은 어법에 부합하는 꼴이지만 공식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이런 무책임한 짓은 박물관 근처에 있는 국립한글박물관에 한글어법을 명백하게 파괴한 사례로 꼭 박제해놓았으면 한다.
누군가가 한자인 여관旅館이나 영어인 hotel을 대신하는 말로 “묵거리”(묵을 만한 집이나 그런 집이 모여있는 골목)를 만들어 재미로 널리 퍼뜨렸다고 해보자. 어법으로 치면 “묵을거리”가 맞을텐데, “묵거리”가 유행하면 같은 논리로 국어사전에 등재할 것인가? 허면 방송에서도 흔히 나오는 “스킨쉽,” “썸남,” “썸녀,” “멘붕,” “심쿵”은 어떠한가? 친구들끼리 술마시며 “먹거리”를 찾고 “부먹”이네 “찍먹”이네 한들 누가 흉을 볼 것인가? 하지만 많은 외국인들도 찾아오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이 나라의 보배인 한글을 비웃는 “먹거리”가 웬말인가?
그렇다고 순우리말을 버리고 한자를 쓰자는 얘기가 아니다. 모든 한자를 버리라는 말도 아니다. 오직 순우리말만 쓰자는 것도 아니다. 한글이든 한자든 많은 사람들이 쉽고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쓰자는 것이다. 한글의 말법과 어법에 맞게 사용하자는 것이다. 내용과 상황에 맞게 품위있는 말하자는 것이다.
몇년 전 학회에서 “돌봄”이란 말을 듣고 의아했다. 돌봄서비스, 돌봄정책이란다. “돌보기”라는 명사형도 있고 “건사”라는 명사가 있는데도 굳이 동명사로 만들어 쓰니 어색하다. 돌보기, 돌보기정책, 돌보기지원 이러면 안되나? 앞으로는 꽃가꾸기가 아니라 꽃가꿈인가? 그러면 나무심기나 쓰레기줍기는 어찌하려는가? 아마도 영어단어 care에 해당하는 말을 찾다가 돌봄을 착안한 모양인데, 어법에 맞지 않는다. 이러니 “돌봄”에서 “늘봄”까지 생각없이 달리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 해당되는 우리말이 있음에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학자들의 게으름과 한글에 대한 가벼운 태도를 지적하고 싶다.
말은 화자의 생각을 담는 그릇
“먹거리”에 심기가 불편한 것은 말이란 단지 화자의 의사를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가 즐기는 줄임말로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말에 담긴 화자의 무책임을 말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자산인 한글의 기본을 흔들고 말을 심심풀이 땅콩처럼 내뱉는 말버릇의 가벼움을 탄식한다.
12.3비상계엄을 전후한 무수한 거짓말과 말공작을 생각해 보라. 무책임한 자들이 아무렇게나 뱉어낸 오염된 말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화나고 어지럽게 만들었던가. 고발사주는 “제보사주”로, 바이든은 “날리면”으로, 뇌물로 받은 디올백은 “조그만 파우치”로, 계엄령은 “계몽령”으로, 계엄군 투입은 “질서유지목적”으로... 국정원의 댓글사건을 “여직원 감금사건”으로 되치기한 수구세력의 수작 그대로다. 뭐가 옳고 그른지를 헷갈려하는 순간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걷어 차는 일이 벌어진다. 우리는 더럽혀진 말에 담겨진 음흉한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 “먹거리”에 담겨진 우리의 무책임을 반성하고 못된 말습관을 고쳐야 한다.
장충동 먹자골목과 "먹거리"
수년 전 버스를 타고 신설동, 동대문,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장충단, 장충단 체육관, 약수역을 지났던 기억이 났다. 장충단길을 지나면서 오른쪽을 보다가 태극당 옆에 “장충동 먹자골목”이라고 적힌 입간판을 보았다. 못해도 7-8미터는 되어 보였다. 장충동 족발로 유명한 동네였다. 사람들은 족발거리 혹은 족발골목이라고 불렀다. 모두 무슨 뜻인지 분명하다. “먹자”라는 말을 썼으니 점잖은 표현은 아니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자시오골목”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어감으로 치면 올 사람도 안 올 것이다). 어쨋든 뜻을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없다. 우리말법에도 부합하고 친근한 말이다.
어쩌면 “먹거리”는 먹자거리의 (잘못된) 준말로 각종 식당이 모여있는 먹자골목이라는 뜻으로 풀어볼 수도 있다. “먹거리”가 음식이나 먹을거리가 아니라 묵거리(묵을거리나 묵자거리의 잘못된 준말)처럼 먹자거리가 된다. “먹자골목” 입간판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했다. 조선시대 안국동 근처에 먹(墨, ink stick)을 파는 상점이 몰려있었다고 치자. 아님 어느날 서예가 대유행하여 인사동에 먹과 관련된 상품을 파는 가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고 치자. 아마도 사람들은 “먹거리”나 “먹골목”이라고 부르고 “먹꺼리”가 아닌 글자 그대로 발음할 것이다. 그러면 표준국어대사전에 뭐라 기록할 것인가? 비슷한 맥락에서 “묵거리”는 여관인가(“묵꺼리”로 발음)? 아님 맛있는 묵을 파는 가게가 몰려있는 곳(“묵거리”로 발음)인가? 그것도 아니면 먹거리의 점잖은(?) 표현인 “墨거리”인가? 가가可呵. 먹거리에서 비롯한 어처구니없는 이 혼란을 어찌하려는가?
먹을 파는 "먹거리"는 어떠한가?
서울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랜 만에 또다시 장춘단, 약수역을 지나면서 옛 생각을 떠올려 봤다. 바야흐로 말장난, 말공작, 언어과잉, 언어파괴의 시대다. 언어의 모호함에 기대어 자신의 잇속(재미와 제멋대로)을 차리고 남을 해코지하는 짓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화려한 거짓말과 새빨간 거짓말과 뻔뻔한 거짓말로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고 국민을 속이는 자들이 활개치고 다닌다. 지난 주술(점괘와 술) 정권에서 설친 인사들을 보라. 자신이 아무렇게나 둘러댄 말을 기억하지도 못하며 책임지지도 않는다. 선량하고 무구한 백성들만 피멍이 들어 아파할 뿐이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모두들 쉽고 뜻이 분명하고 어법에 맞는 말을 사용했으면 한다. 좋은 말과 나쁜 말을 상황에 맞게 가려서 사용했으면 한다. 의미없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간결하게 뜻을 전하는 말이 되었으면 한다. 거짓없이 내뱉은 말에 책임지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그런 진솔하고 사람냄새나는 말을 희롱하며 은근한 정을 나누었으면 한다. 나아가 언어의 말이 아닌 사람의 뜻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 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사람사는 아름다운 세상이었으면 한다.
같이 읽기
- 김남미. 2018. [맞춤법의 재발견]〈59〉‘먹거리’를 표준어로 인정한 이유. 동아일보. 6월 6일.
- 정희창. 2000. 표준국어대사전의 어문 규범.
인용: 박헌명. 2025. 국립중앙박물관의 "먹거리"가 불편하다. <최소주의행정학> 10(9): 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