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Young Lee

가왕 조용필의 판소리와 공직자의 개소리 PDF


월간
 
최소주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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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의 노래 “슬픈 베아트리체”가 흘러나왔다. 교향악단의 선율을 거느리고 한 자 한 자 씹어넘기듯 읊어 내려가는 간절함이 함박눈처럼 내려왔다. “떠나버린 나의 사랑아, 꽃상여에 그대 보내며 살아야 할 이유마저 없으니...” 순정을 담은 시구詩句가 더욱 또렷하게 가슴 속에 들어왔다. 무심코 지나쳤던 대목조차 영화 속 장면처럼 눈 앞을 스쳐 지나갔다. 가왕 조용필이 지난 9월 6일 광복 80주년을 기념한 공연을 펼쳤고 한가위에 전파를 탔다.

조용필에 빠져들다가 고개를 떨구다

조용필은 이번 공연에서 세 시간 동안 30곡을 불렀다. 아, 풋풋하던 젊은 오빠는 어느덧 일흔 다섯의 백발이 되었건만... 많은 사람들이 변함없는 그의 목소리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창밖의 여자”의 처절함과 날카로움은 옅어지고 그 자리에 “그 겨울의 찻집”의 풍미와 처연凄然함으로 채웠다.

무엇보다 조용필의 치열함이 마음을 움직인다. 한달 반 동안 거의 매일 실전에 가까운 연습을 했다고 한다. 이것이 마지막 공연, 마지막 노래인 양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전쟁과 같은 처절한 몸부림이다. 배수진으로 마지막 전투를 치르는 백전노장의 비장함이다. 그 덕에 사람들은 삶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공연장에 모인 남녀노소 2만여 명이 응원봉을 흔들며 “떼창”으로 호응했다. 빛으로 수놓은 물결이 흥겹게 춤을 췄다.

흠뻑 젖어든 감동을 가까스로 수습한 나는 문득 서글퍼졌다. 조용필은 혼을 담은 노래로 일상에 지친 관객을 위로하고 함께 어울렸는데, 어찌하여 작금의 공직자들은 공복의 기본을 망각하고 행패를 일삼는단 말인가? 백성들과 더불어 즐거움을 나누는 與民同樂은 커녕 주인을 업신여기면서 거짓과 궤변을 늘어놓고 거들먹거리고 있으니...

조용필의 판소리와 공직자의 개소리

판소리는 소리(창), 아니리(말), 너름새(발림), 추임새로 짜여져 있다. 여기서 소리는 소리꾼이 부르는 노래를 말하고, 아니리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설辭說을, 발림는 소리꾼의 몸짓을 말한다. 추임새는 북을 치는 고수와 관객의 몫이다. 조용필의 마음을 울리는 소리, 짧고 진솔한 말, 자연스런 표정과 손짓에 따라 2만 명이 울고 웃고 내지르고 쓰러졌다. 모두가 완벽하게 어울린 판소리였다. 예술이었다.

소리를 잘한다는 말은 노래를 잘 한다는 뜻이다. 노래가 엉망이면 소리가 아니라 개소리다. 영혼을 위로해주는 예술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화가 치밀고 육두문자가 튀어나온다. 환호와 박수가 아니라 짱돌이나 술병이 날아든다.

“김여사 정권”이 들어서기 전부터 고위 공직자들의 언행은 꼴볼견을 넘어섰다. 기자회견이든 청문회든 국정감사든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당선자시절부터 안하무인으로 주권자를 욕보였다. 통수권자가 “부대 열중쉬어” 그 한마디를 못하나... 대통령의 동선을 밟고 왕족 앞에서 건들건들인 푼수데기. 매사에 성의가 없고 천박하다. 술꾼과 점꾼이 부창부수다. 뭘 아는 것이 없으면서 아는 것처럼 엉뚱한 사설을 장황하게 떠벌린다. 아니리가 아닌 헛소리요 잡소리다. 뭔 말인지 모르겠거나 말문이 막히면 버럭질에 훈계질이다. 너름새가 아니라 핏대질이고 삿대질이다. 위기를 모면하느라 그때 그때 거짓말로 다른 거짓말을 덮다 보니 말걸음이 꼬여 스스로 나자빠진다. 주가조작이든, 목걸이든, 핸드백이든 새빨간 거짓말들의 향연이다. 아름다운 노래가 아닌 돼지 멱따는 소리다. 말이 아니라 막말이고 말폭력이다. 차라리 고문이다. 이러니 관객의 추임새는 한숨과 야유와 욕설과 탄핵일 수밖에...

“윤건희”가 임명한 장차관과 기관장(임원)도 마찬가지다. 초록은 동색이라 했다. 그냥 전리품(spoils)처럼 자리를 나눠먹은 셈이다. 점쟁이와 비선들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가운데, 수구, 친일, 검사, 판사, 학연, 지연, 이웃, 그들의 친구들이 점령군처럼 관료제를 농락했다. 대통령실 CCTV에 드러난 한덕수, 최상목, 이상민, 박성재의 모습은 그들의 거짓말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보여준다. 자신의 일을 몰라 딱하거나(김홍일, 김태규, 민영삼), 친일본색을 주체하지 못하거나(김문수, 김태효, 김형석, 이진숙), 반대 방향으로 치달리거나(안창호, 유철환, 김용원, 정승윤, 박선영), 행동대장처럼 달려들거나(한동훈, 원희룡, 김용현, 유병호, 최달영), 내란수괴를 풀어주고 무리수를 두거나(지귀연, 심우정, 조희대), 사건 조작으로 비난을 받거나(최재현, 이시원, 강백신, 엄희준, 박상용, 이희동), 그 자리에 왜 있는지 모르겠거나(이상민, 최재해, 김영호, 신원식, 조태용, 정진석)... 관료제가 멀쩡하게 돌아갈 리가 없다.

불량 공직자들의 천태만상이다. 소리도 아니리도 아닌 개소리와 헛소리다. 공복인 주제에 주인을 능멸하고 하고 있다. (1) 일단은 모른다, 기억에 없다고 잡아뗀다. (2) 아는지 모르는지, 맞는지 틀리는지 가부를 밝히지 않고 침묵한다. (3)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자료제출이나 답변 자체를 거부한다. (4) 관계없는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거나 말장난으로 시간을 때운다. 동문서답이다. (5) 온갖 거짓말로 변명하고 진실을 덮는다. (6) 증거를 들이 밀면 꼬리를 내리고 얼버무린다. (7) 분수를 모르고 실실 비웃거나 오만한 태도로 일관한다. (8) 윽박지르거나 호통을 친다. 어찌하여 머슴이란 놈들이 주인이 묻는 말에 똑부러지게 답을 하지 못하는가. 이들의 추태와 패악질에 신물이 난다. 멍석말이라도 해서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 한다. 아님 죄다 옷을 벗기고 칼을 채울 일이다.

조용필의 소리, 아니리, 너름새를 배우라

소정선생님은 “무서웠을 때 내가 한 말은 적의 이성이 거절하지 못하는 최소의 말이었으며...”(2008: 491) 이는 “실존적 발언”(1996: 54)이라고 하셨다. 한계상황을 경험한 자는 꼭 할 말만 한다. 마지막인듯 간절하기 때문이다. 교언영색巧言令色보다는 어눌해도 필요한 말만 하라고 하셨다. 조용필은 몇 마디만 남기고 십여 곡을 불러 젖혔다. 어쩌면 그래서 눈과 귀와 가슴이 더 호강했는지 모른다. 노래로 말하는 참소리꾼이자 최소주의자다. 황홀한 그의 소리와 아니리와 너름새가 공직자들의 귀감이 되었으면 한다. Sojeong

같이 읽기

인용: 박헌명. 2025. 가왕 조용필의 판소리와 공직자의 개소리. <최소주의행정학> 10(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