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Young Lee

유시민의 ABC범주와 B들의 난동 PDF


월간
 
최소주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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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씨가 언급한 “ABC” 범주가 화제다. 지난 달 18일 매불쇼에 출연한 그는 권력 편에 선 사람들을 A, B, C로 분류했다. 일반 시민이나 지지자보다는 정치인, 언론인, 비평가들의 행태를 단순화하여 설명하기 위한 방편이다. 여기저기서 시의적절하지 않다느니, “갈라치기”라느니, 사과해야 한다느니 말이 많다. 이렇게까지 시끌벅적할 일인가. 생뚱맞고 과도한 반응이 불편하다.

가치를 쫓는 자와 잇속을 탐하는 자

유씨에 의하면 A는 권력의 가치(이념)에 충실한 핵심 세력이다. 중심에 있는 알갱이다. 종종 노선을 두고 치열하게 다툰다. 정권이 힘이 셀 때에는 설쳐대는 세력에 가려 표가 나지 않지만 정권이 위기에 몰리면 충심으로 지켜준다. B는 주로 잇속(이해관계)에 충실한 세력이다. 지금처럼 정권이 잘 나갈 때는 만고의 충신처럼 설치고 다니지만 정권이 어려워지면 제일 먼저 등을 돌리는 세력이다. 감탄고토甘呑苦吐라 했다. 잇속을 위해서는 동지와 식구는 물론 영혼까지도 팔아치울 자들이다. C는 가치와 잇속을 모두 고려하여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추구하는 부류다. 보통 A와 B가 양극단에 분포하는 한계인이라면 C는 중원을 두텁게 차지하는 평균인이다. 정치인으로 치면 노무현은 A, 윤석열은 B, 김대중과 문재인은 C에 해당한다고 했다.

유씨의 범주화를 비난하고 분개하는 자들은 아마도 유씨가 자신을 B로 분류했다고 짐작한 모양이다. 스스로 A급이라고 확신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B급이라니 화가 치밀만 하다. 마침 물이 들어와서 힘껏 노를 젓고 있는 호시절 아닌가. 무서울 때(독재시절)에는 고개를 땅에 처박고 벌벌 떨고 있다가 따스한 봄날이 되니 꾸역꾸역 기어나와 혼자서 민주화를 이뤄낸 것처럼 활개치고 다니는 놈이란 소리 아닌가! 만일 스스로를 B라고 생각했다면 구태여 화를 내고 비난할 필요가 없다. 인간을 성인, 일반인, 범죄인으로 구분하여 설명하면 이는 범죄인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인가?

무서울 때와 안무서울 때의 B를 보라

사람들이 “ABC” 범주를 혼동을 하게 된 원인을 굳이 찾자면 유씨가 대상을 지도자, 정치인, 비평가, 지지자를 넘나들며 설명했기 때문이다. 또한 가치와 잇속이라는 차원이 교차하는 밴다이어그램으로 표시한 탓도 있다. 아마도 A, B, C의 몫을 표시하는 동그라미그림(pie chart)이었어야 했다.

이제 정치상황을 고려하여 민주정권과 독재정권, 힘이 셀 때(지지율이 높을 때)와 약할 때(비난받고 위기에 빠질 때)를 상정해보자. 민주정권은 설령 틀린 말을 해도 부당하게 맞아죽을 일이 없는 “안무서운” 체제이고 독재정권은 옳든 그르든 독재자가 싫어하는 말을 하면 맞아죽는 “무서운” 체제다. 그러면 네 개의 동그라미그림을 그릴 수 있다.

우선 민주정권이 힘이 셀 때는 A와 C의 몫이 크고 B의 비중이 작다. 예컨대, 각각 10%, 85%, 5%가 된다고 생각해 보라. B가 활개치고 다녀도(A로 참칭하여 사람들을 헷갈리게 해도) 노선을 관리하는데 문제는 없다. 민주정권이 힘을 잃고 위기에 직면하면 A 일부가 B와 C로 떨어져 나가 몫이 줄고, C일부가 B로 바뀌어 전체적으로 B가 두터워진다(예컨대, 3%, 77%, 20%). 이때 A(참된 중심)와 B(기회주의자)는 쉽게 구분된다. 노무현을 끝까지 지킨 자들과 정당한 후보를 흔든 “후단협”을 보라. 이재명을 사수한 자들과 “사법리스크”라면서 멀쩡하게 선출된 대표/후보를 끌어내리려 했던 “비명횡사”들을 보라. 적과의 내통까지 불사한 자들이 제일 먼저 등에 칼을 꽂았다. 내 편이라 믿었던 자들이 던진 돌이 더 모질고 깊은 상처를 남겼다. 민주당에서 이해찬은 A의 정화精華다.

독재정권이 힘이 셀 때는 C의 몫이 크고 A와 B의 비중이 작다(예컨대, 각각 90%, 3%, 7%). 독재자의 서슬이 퍼렇게 살아있을 때 B는 A에 붙어먹지만 감히 A를 참칭하지 못한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으니 선은 넘지 않게끔 몸조심을 한다. 독재정권에서 A는 “x핵관”이나 “V0” 정도여서 앞잡이를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다. 독재자가 약해지면 A와 C는 줄어들고 B는 급격히 커진다(예컨대, 1%, 74%, 25%). 최악은 B가 A를 없애고 A 행세를 하는 것이다. 난장판이 된다. A에게 달려들어 목을 노리는 자들이 많은데 순전히 잇속을 챙기려는 배신자와 개혁을 원하는 운동가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개혁에 성공한 후 논공행상을 다투며 자리를 꿰어차는 자가 있는가 하면 본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자가 있다. 개혁정권에서 전자는 B가 되고 후자가 A가 된다. 다수를 차지하는 C는 나쁜 정권에서는 떳떳한 삶을 체념한 자들이고, 정당한 정권에서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깨어있는 시민으로 변모한다.

B의 잇속을 꿰뚫어 B의 난동을 경계해야

소정 선생님은 사람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가장 깊은 동기는 이해관계이며, 사회적 관습과 인간관계가 잇속을 둘러싸고 있으며, 제일 밖에 드러나는 거죽은 합리성이라고 보았다(1991: 120-121). 누구나 겉으로는 그럴듯한 합리성을 내세워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지만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이해관계(잇속)을 꿰뚤어 보아야 언행의 참동기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후단협”도 “비명횡사”도 말은 많고 화려했지만 결국은 분수에 넘치는 잇속(공천)을 챙기려는 수작이었다. 경우없는 자들의 허무한 최후였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때그때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대중영합주의이다(2008: 617). 경우를 모르고 난동을 벌인 B세력의 운명이다.

하지만 B가 없는 A와 C만의 세상은 존재하기 어렵다. 어쩔 수 없이 B가 필요하지만 일을 그르치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 옛날 성을 공격하는 장군은 아직 준비가 안되었는데도 공을 세우려고 성급하게 성벽을 타고 올라가는 병사를 활로 쏘아 떨어뜨렸다고 했다(2008: 575). “밭에 돌이 좀 있을 수도 있다. 기회주의자도 있을 수 있고 좌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의 밭에서 정치를 주도하는 것은 흙이어야 한다”(574-575). 김원기씨의 말을 빌자면, B와 함께 가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B를 중심에 두지는 말아야 한다. 중요한 국면에서 우리가 B의 난동을 경계해야 하는 까닭이다. Sojeong

같이 읽기

인용: 박헌명. 2026. 유시민의 ABC범주와 B들의 난동. <최소주의행정학> 11(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