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초에 드디어 공소청이 출범한다. 지난 78년 간 기소권과 수사권으로 나라를 쥐락펴락했던 검찰청이 자폭한 결과다. 국민의 녹을 먹고 사는 공무원 주제에 기고만장해서 빤스바람으로 날뛰던 정치검사들을 생각하자면 공소청이 아니라 “기소청”으로 하고, “검사”라는 단어 자체를 없애야 했다(“소사訴事” 정도도 과분하다). 요즘들어 경찰수사의 헛점을 고발하는 뉴스가 지나치게 부각되고 있다. 벼랑끝에서 이성을 상실한 검사들과 관성처럼 같은 편을 먹은 기레기들의 솜씨인가? 봐라, 저 모양인 경찰을 어떻게 믿겠는가, 선량한 국민들만 피해를 본다, 그러니 검사가 보완수사권(아님 보완수사요구권만 이라도)을 가져야 한다. 뭐 이런 소리 아닌가? 시커먼 속이 훤히 보인다.
수사와 기소 분리는 분업화 원리이다
보완수사권을 둘러싼 시시비비는 대부분 무의미하다. 어떻게 해서든 수사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쪽과 그 반대쪽의 말싸움일 뿐이다. 힘겨루기는 이미 끝났는데, 미련을 못버리고 죽은 아들 불알만지는 어미의 부질없는 소망이다. 목이 떨어진 뱀의 머리와 몸통이 각자 본능대로 꿈뚤거리는 모습이랄까? 마지막 힘을 쥐어짜 허공에 날리는 짓이다.
먼저, 기소권과 수사권 분리는 이미 법률개정으로 끝난 얘기다. 이미 떠난 버스요, 흘러간 물이다. 어느날 갑자기 튀어나와 결정된 것도 아니다. 수십 년 간 켜켜이 쌓인 울분을 풀지 못하고 있었는데, 윤석열(김명신)이 화끈하게 물꼬를 터드렸다. 열사烈士의 인신공양으로 이뤄낸 화룡점정이다.
둘째,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것은 상식이다. “치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의약분업처럼 “수사는 경찰에게 기소는 소사에게” 맡기자는 “사소분업査訴分業”이다. 조직 원리로 치면 전문화와 분업화다. 검사들이 들먹이는 “...프로”(prosecuter)는 법정에서 죄를 지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허구헌날 골프채나 패지말고 본업인 기소나 똑바로 하라는 것이다. 두 가지 권한을 틀어쥐고 영감·땡감질을 해온 검사의 입장에서는 하늘이 무너지고 삼강오륜이 땅에 처박히는 심정이겠지만, 그것이 세상 이치이니 어쩌겠는가. 검사의 事는 일이지 권력을 뜻하지 않는다. 밥그릇 타령은 일을 빌미로 권력을 탐해온 정치검사들이 할 짓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봄눈처럼 사라질 치기어린 투정이다.
세째, 검찰과 경찰의 관점이 아닌 국민의 눈높이로 봐야 한다. 국민 대부분은 법조문이 어찌 되든 수사를 누가 하든 기소를 누가 하든 재판을 누가 하든 관심이 없다. 그저 공정하고 납득할 만한 수사와 기소와 재판 서비스를 받고 싶을 뿐이다. 모두들 국민을 내세우고 있지만 방점傍點은 권력의 행방에 있다. 국민을 우습게 보고 깔봤던 자들의 입발림이라니... 우리의 비극은 경찰, 검사, 판사 모두 국민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경찰이 믿을 만해서 수사권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일이 망했으니 원칙이라도 똑바로 세우자는 것이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대서 자동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일의 원칙을 잘 구현해야 하는 과제와 보완수사권은 전혀 다른 문제다.
네째, 보완수사권이든 보완수사요구권이든 결국은 권력기관의 신뢰에 달려있다. 만일 경찰청, 공소청, 법원이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면 수사권이든 요구권이든 필요치 않다. 유관조직 간의 협력는 당연한 것이고, 자신의 입장에서 필요한 사항을 상대 기관에 밝히고 의견차이를 조정하는 것은 기본이다. 법조문에 못박아 두든 말든 서로 협조하여 일을 하는 것은 멀쩡한 조직의 상식이다. 하다못해 실질적으로는(서류상이 아니라) 판사가 수사하고, 경찰이 기소하고, 검사가 판결을 낸다 해도 무슨 상관인가.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를 낼 것 아닌가. 현재의 검찰이라면 보완수사권은 “한동훈식 구멍”이 되어 개정법안을 무력화할 것이다. 제 버릇 개 못준다. 모든 경찰이 형편없다면 보완수사요구를 한다 해도 무슨 소용인가. 검찰의 궤변이다. 책임공방만 벌이다 일을 망칠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공공서비스 관점에서 보라
다섯째, 조직구조 개편보다는 좋은 일꾼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부분의 검사와 경찰은 소임을 다하고 있다. 안그랬다면 나라가 멀쩡했을 리가 없다. 결국 1할도 안되는 소수의 정치검사와 정치경찰 혹은 미꾸라지들이 일을 망쳤고 조직을 무너뜨렸다. 떡검, 색검(성검), 썩검, 똥검, 검새, 견찰... 얼마나 상납을 즐기고 해먹었던가. 국민을 섬기기는 커녕 눈치라도 살폈던 적이 있던가. 이런 암덩어리와 망나니들을 쳐내지 않고서는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어차피 조직의 무질서도(entropy)는 증가하기 때문에 꾸준하게 조직구조를 쇄신하고 가망없는 일꾼들을 물갈이해야만 한다.
여섯째, 신상필벌의 기강을 세워 권력기관의 공무원에 대한 책임을 가혹하게 물어야 한다.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 만큼 막강한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 상식이 특히 권력기관에서 거꾸로 적용되었던 것이 우리의 불행이다. 비리 경찰, 특별히 막가파 검사나 판사에게 혹독한 책임을 물렸더라면 지금의 참담한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 자들에게 중징계랍시고 정직이나 강등이라니 말이 되는가. 예컨대, 최고 3년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덮거나 비틀어버린 경찰, 검사, 판사에게는 6년형 책임을 묻는다. 김학의를 비호한 까막눈 검사들은 성폭력 죄의 곱절로 단죄한다. 내란 수괴를 시간셈으로 감옥에서 풀어준 판사는 죽음보다 진한 참형斬刑으로 속죄케 한다. 아마도 이러한 처벌강화법안이 상정되었다면 보완수사권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형평이나 비례원칙을 들먹이며 머리띠 두르고 다들 “생존투쟁”에 나섰을 것이다. 권력기관 공무원들이 제일 아파하는 순서가 있다.
보완수사권이 아니라 신상필벌이 핵심이다
오래 묵은 체제를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없다. 새로운 제도가 안착할 때까지 혼란과 갈등과 다툼은 불가피하다. 인내하고 긴 호흡으로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한다. 제도라는 기계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간과의 간극을 메워야 한다. 완벽함이 아닌 친숙함은 그 과실이다. 의료대란까지 불사했던 의약분업도 다 그러했다.
같이 읽기
- 이정민. 2026. 보완 수사권 논란, 누구를 위한 논쟁인가. 삼다일보. 2026. 7.22
인용: 박헌명. 2026. 보완수사권이 아닌 권력기관의 신상필벌. <최소주의행정학> 11(9):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