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여 <김대중 내란음모의 진실>(2000)을 주문했다. 벌써 50년이 되어가는 얘기를 들추는 까닭은 무엇인가? 어쩌면 우리는 앞세대가 얼마나 참혹한 세월을 견뎌왔는지, 얼마나 간절하게 민주주의를 염원했는지를 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절실함이 없으니 그냥 배부른 한량들이다. 적은 안팎으로 옥죄어오는데 천하태평으로 자리다툼이나 벌이고 몹쓸 언행으로 동지에게 상처만 주고 있다.
내란음모로 내몰린 자들의 피눈물을 아는가?
5.18 민주화운동 전날 김대중, 이문영, 문익환, 고은, 예춘호, 한완상, 송건호, 한승헌, 이해동 등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지독한 고문을 받았다. 두 달 넘게 이어진 학대와 매질은 김대중이 북한의 사주를 받아 내란을 획책했다는 결론으로 끝났다. 김대중에게는 사형이 내려졌고, 이문영과 문익환은 징역 20년을 받았다. 전두환은 광주의 피를 제물삼아 군사반란으로 내달렸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다. 전씨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고 추징금도 납부하지 않았지만 1997년 사면을 받고 풀려나 호의호식하며 천수를 누렸다. 반면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의 피해자들은 2004년에 가서야 무죄를 받고 누명을 벗었다. 참으로 모질었던 반역의 세월이었다.
지난 3일 김민석은 민주당 의원총회를 비공개로 열고, 이른바 신천지·반명·분열주의 비밀연합의 증거가 없었다며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대단히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씨가 고뇌에 찬 결단을 한듯 울먹였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예고된 것과는 달리 의혹을 조사한 결과는 발표하지 않았다. 열람은 허용하겠단다. 어차피 알려질 것인데 왜 이러는가. 그의 진심이 아닌 꼼수가 읽힌다.
김씨는 지난 7월 20일 당대표 경선 연설회에서 “반명, 분열주의, 신천지의 3자 비밀연합을 깨는 것이 이번 전대의 본질”이라면서, “3자 연합의 핵심들이 온갖 궤변과 왜곡으로 당과 정부와 대통령을 흔드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고, “잘못 뽑으면 다 잘못된다”고 했다.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기득권을 남용한 잘못된 지도부를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밀연합을 확인해줄 상당한 증거가 축적되어 있다고 누차 자신했다. 그런데 당대표에 당선된 뒤 조사결과 발표를 미적대다가 마지못해 내놓은 답이 고작 이것이란 말인가? 허무하고 어이없다. 황당하고 화가 난다.
국무총리를 내던지고 당권도전에 나선 그가 난데없이 3자 비밀연합을 들이밀어 선거판을 흔들었을 때 이미 참사는 정해졌다. 그 발언이 사실이라면 실정법 위반이니 민주당은 경찰 조사와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연루된 자들을 죄다 색출하여 처벌하고 다시는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추방해야 한다. 법위반이 아니라 해도 불순분자들에게 휘둘리는 정당을 당원들이 용납할 수 없다. 교주의 허수아비들이라면 문재인이든 정청래든 내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김씨는 위험을 무릅쓰고 썩은 곳을 도려내 당을 살려낸 영웅이 될 수 있다. 만일 사실이 아니라면 당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기고 불법으로 선거를 망친 것이 된다. 내란음모처럼 지어낸 얘기로 정적을 짓밟은 것이다.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당 전체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자해질이고 이적질이고 역적질이다. 어느 경우든 정당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치받은 중대한 범죄행위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박수치고 어깨 두드리고 아무 일도 아닌 듯 끝낼 문제가 아니다. 애초부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잔머리를 굴리다 제발등을 찍은 것이다.
심재철의 서울역 회군과 김민석의 신천지 회군
그런데 김씨의 선택은 이도 저도 아닌 “울컥 사과”였다. 당대표가 당에 미칠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는 전언이다. 그러니 순순히 받아들이고 더이상 분란을 만들지 말자며 옆에서 거든다. 벼룩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다고 훈수둔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했던가. 만일 인두겁을 쓴 마구니가 지도부를 장악하여 지지율을 까먹었다고 주장하면 뼈와 살을 발라내어 사람임을 확인한 뒤 울컥하면 그만인가?
근거없이 신천지를 들먹이며 정적을 몰아붙였고, 당을 분열시키고 당권을 차지한 당사자들이 이제와서 통합과 안정을 말하고 있다. 이제와서 신천지의 선거개입을 경고한 것이었을 뿐이라니... 국민에게 호소하고 경고하기 위해 계엄을 했다는 윤건희식 궤변이다. 전두환도 정적을 빨갱이로 몰아 때려잡고 정권을 잡은 뒤에는 사회 정의와 안정을 내세워 국민 저항을 찍어눌렸다. 정의를 배반하고 안정을 무너뜨리고 인간을 파괴한 자들이 늘어놓는 궤변이라니... 전두환과 윤건희의 단순무식과 몰염치 그대로다.
나는 또한 김씨의 얼굴에서 심재철의 “서울역 회군”을 본다. 심씨는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서 독재타도를 외치며 기세등등했지만 전두환의 양동작전에 말려 허무하게 회군을 발표했고 많은 동지들을 좌절시켰다. 살인마 편에 서서 호의호식했던 그는 끝내 반성과 책임을 외면했다. 김민석도 호기롭게 비밀연합을 폭로하며 당권을 거머쥐었지만 “신천지 회군”를 선언하며 꼬리를 내렸다. 당을 찢어발겨 놓고 이제 조용히 덮자고? 통합하자고? 덮는다고 덮일 일인가? 그러면서 자리는 못내놓겠다니 경우없는 짓이다. 결단의 순간에 과감하게 자신을 버리지 못해 일을 그르친 자들이다.
김민새는 참회하고 깨끗하게 물러나라
김민석은 오랫동안 야인으로 머물다가 천신만고 끝에 돌아왔지만 결국은 도로 “김민새”가 되었다. 깜냥이 그러하니 어찌하랴. 설령 대표 자리를 고수한다 해도 멀쩡한 사람 구실은 어렵다. 이제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은 귀담아듣지 않을 것이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 아닌가. 영令이 서지 않을 것이다. 또 비밀연합 의혹을 털어내지 못하고서 어떻게 당원과 국민들의 지지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신천지의 머슴일지도 모르는 후보에게 누가 표를 준단 말인가? 조국혁신당에게 밀려 도로 “꼬마 민주당”이 될 신세다.
정청래는 당원들에게 모욕감을 주고 당을 혼란과 위험에 빠트린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라고 김씨에게 요구했다. 그의 말대로 결자해지하라. 인간으로 참회하고 깨끗하게 물러나라.
인용: 박헌명. 2026. 김대중 내란음모와 신천지 비밀연합. <최소주의행정학> 11(11):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