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Young Lee

월간
 
최소주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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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병원에서 투석透析하시던 소정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대뜸 일본 관료제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셨다. 나는 좀 얼떨떨하다가, 일정한 체계를 잘 갖추어 일을 꼼꼼하게 수행하지만 너무 경직되어 있다고 답했다. 선생님은 일본을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결국 일본은 우리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짧게 말씀하셨다. 강의실에서 한국, 중국, 일본의 관료제를 비교하여 설명하신 것은 기억하지만 정확한 취지는 당시에 알지 못했다. 최근에서야 내 답변이 피상적이었음을 깨달았다. 일본에 머물면서 이런 저런 일을 관찰하고 경험한 결과다.

원칙아닌 원칙, 위법아닌 위법

아베 총리의 사학비리 사건이 확산되고 진화되는 과정은 흥미로왔다. 아베 측근이 운영하는 모리토모森友 학원에 국유지를 헐값에 넘겨주었고, 재무성 고위 공무원까지 동원하여 공문서를 조작했다. 끝내 모든 용의자가 불기소처분을 받자 검찰마저 “손타쿠忖度”라는 자조를 쏟아냈다. 원래는 타인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린다는 뜻이지만 조직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심기를 눈치껏 살펴 알아서 긴다는 소리다. 서구의 법질서를 받아들여 합리적이고 꼼꼼하게 일을 한다는 일본관료제의 민낯이다. 또 일제 강제징용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전범기업이 배상하라는 한국대법원의 판결을 빌미로 아베 정권은 이달 초 주요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하였다. 얼마 전에는 수출통제절차 간소화 대상국에서 한국을 제외시켰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종료한다고 선언했고 국민들은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맞서고 있다.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전략물자 수출을 찔끔찔끔 허가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혀를 찼다. 고작 이런 관료제였던가? 눈가리고 아웅이라고 해야 하나...

일본인들은 일반적으로 원칙과 절차를 자세하게 적어놓고 그것을 철저하게 따르려고 한다. 체화된 습관을 넘어서 집착증이라 해도 될 정도다. 어지간하면 바꾸지 않고 하던 대로 한다. 공공기관의 문서양식은 어렸을 적 기억을 소환한다. 은행에서 해외송금을 하려면 넉 장이 넘는 서류를 작성하고 반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 한국에서는 신분증과 수결로 10분이면 끝낼 일을... 문서에 도장을 열심히 찍는 것이나 돈을 하나하나 세면서 계산하는 것이나 감동스러운 꼼꼼함이다. 지독하게 깨끗한 일본 화장실의 치밀함이라고나 할까. 이런 점에서 일본 관료제는 어쩌면 막스베버의 이념형(ideal type)에 가깝다. 전문성을 갖춘 공무원이 법과 절차에 따라 불편부당하게 일을 처리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원칙이 항상 원칙이 아니고 위법이 위법이 아니라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원칙 자체는 서구의 합리성을 구현하는 것이어서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규칙을 정하더라도 언제나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빠져나갈 구석을 만들어 놓는다. 원칙 자체를 모호하게 적어놓거나, 예외를 넓게 적어놓거나, 그도 아니면 대놓고 권력자의 재량사항으로 해놓는다. 어느 경우이든 권력자가 독한 맘을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미묘함을 남겨둔다. 구렁이 담넘어가듯 원칙과 위법을 넘나드는 변화무쌍함이다. 애초부터 어기기 위해 원칙과 규칙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도 있다. 아베 정권이 재등장하면서 구석구석에 측근을 박아놓았는데, 이들의 막가파식 권위주의 행태에서 규칙같으나 규칙이 아닌, 불법같으면서도 불법이 아닌 “어정쩡한 치밀함”을 관찰한다.

좀더 심각한 상황에서는 원칙이나 규칙은 허수아비가 된다. 문서에 멀쩡하게 적혀있지만 아무런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 벌거벗은 힘(naked power)이 야만스럽게 관료제를 쥐고 흔든다. 비유하자면, 필수과목에서 낙제를 받거나 논문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학생도 졸업을 시킨다. 윗사람이 결정을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무슨 수단을 동원하든 그대로 집행되어야 한다. 물론 원칙을 적용하자면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상부의 지시로 문서조작을 했다며 자살한 재무성 공무원의 억울함이 납득되는 대목이다. 권력자는 조직구성원의 협력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조정자가 아니라 식민지에 쳐들어온 점령군에 가깝다. 나는 이러한 황당하기 짝없는 폭력을 관료제에서 어떻게 소화하는지가 궁금했다.

권력남용에 대처하는 공직자의 선택

가장 쉬운 방법은 알아서 기는 것이다. “손타쿠”로 윗사람을 알아서 섬긴다. 나쁜 윗사람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찍어누르면 최대한 규정을 유리하게 해석할 수 있는지를 궁리한다. 억지로라도 꿰어 맞출 수 있는지 따진다. 예를 들면, 논문심사위원 모두가 부적격으로 결론을 내려도 다시 심사하도록 종용한다. 누가 봐도 불통이 당연한데도 명문 규정이 없으니 윗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랜다(의견이 엇갈린 경우에만 명문 규정이 있으니까). 상상력으로 해결이 안되면 문서를 조작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통계학과로 지원한 학생이 생뚱맞게 경제학과로 합격된다. 또 위원회같은 제 3의 기구를 통해 현상이나 사실을 바꿔치기한다. 심각한 폭력이나 부정행위도 위원회에서 무혐의로 발표한다. 명백한 증거가 제시되어도 자신의 의견이 그러하다고 해명한다. 사실과 진실과 관계가 없는 자기최면이나 자기기만일 뿐이다.1)

두번째는 소극적으로 침묵하고 묵인한다. 담당자가 “손타쿠”를 몰라 분위기파악을 못하면 윗사람은 권력남용의 강도를 높인다. 담당자를 불러내서 집요하게 의지를 전달하는데, 대개는 여럿이 둘러싸고 몰아부친다. 이것 역시 약발이 서지 않으면 결단을 내린다. 아랫사람의 권한으로 행사해야 할 결정을 이렇게 결정하라고 지시한다. 아랫사람은 뒤늦게 알아서 기든지, 침묵하든지, 아니면 위험을 각오하고 내부고발을 하든지 해야 한다. 예컨대, 부서내규를 이렇게 저렇게 바꾸도록 회의를 열어 결정하라고 한다. 물론 상식에 맞지 않는 내용이다. 아랫사람은 회의를 열어 윗사람의 통보내용을 공개하고 자신들의 결정이 아님을 밝힌다. 하지만 만장일치로 합의된 안건으로 둔갑되어 윗사람에게 보내진다. 자신의 결정을 아랫사람의 합의로 포장하여 자신이 재가裁可하는 셈이다. 아랫사람의 침묵은 윗사람의 심기를 건드릴 수는 있으나 양심상 맨정신으로 따를 수는 없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다.

세번째는(내부고발이나 항거나 물리력 동원 등은 열외로 치자) 권력자가 전면에 등장하여 원하는 것을 강제하는 경우다. 물론 원칙과 규정에 위배되기 때문에 관료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때 관료들은 원칙대로 처리하되 윗사람의 결심내용을 별도로 문서에 남겨둔다. 예컨대, 성적증명서에는 필수과목이 낙제라고 찍히지만, 내부문서로 정황을 기록해놓고 졸업장을 발급한다. 이런 행위를 지칭하는 고유한 어휘가 있댄다. 물론 이 경우에도 회의에서 권력자의 엄중한 의지임을 밝히고 “침묵의 만장일치”로 통과시킨다. 언뜻 납득하기 어려운 이러한 관행은 권력자의 폭력을 피하되, 원칙을 위반하는 자신을 보호하는 궁여지책이다. 권력남용과 원칙 사이에 마련해 둔 완충장치라지만 사실상 눈가리고 아웅이다.

이러한 편법과 황당한 관행을 이해하면 아베 정부가 수출허가를 매번 받도록 하거나 절차간소화 대상국에서 제외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첫째,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허가를 내주는 것도 내주지 않는 것도 그때그때 유불리에 따라 신축성을 발휘한다. 과거 중정이나 안기부에서 패는 것이 유리하면 패고 안패는 것이 유리하면 점잖게 대접하던 것과 마찬가지다. 둘째, 아베 정권이 상상력을 어디까지 발휘할 지, 원칙과 현실의 괴리를 어찌 정당화할 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변덕스런 자의성과 불확실성이 사람을 더 힘들게 한다. 세째, 형식적으로는 폭력이 아닌 합의에 의한 결정이어서 책임을 따지기 어렵다. 권력자가 권한을 남용하여 강제했다는 것을 명확히 밝히기가 쉽지 않다.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모두가 결정한 일이니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선비의 나라? 무사의 나라?

왜 이런 일들이 관료제에서 벌어지는 것일까? 권력남용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어느 나라에서나 관찰되는 현상이다. 하지만 벌거벗은 폭력에 대응하는 일본인의 태도는 좀 특별하다. 집단주의에 순응한 탓인지 고개를 쳐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윗사람의 지시를 거부하거나 외부에 폭로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당장 자기가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대부분 앞에 나서지 않는다. 부당한 것을 잘 알고 있더라도 대부분 침묵한다. 학력, 소득, 지역, 성별과 관계없이 감정을 드러내거나 말하는 것을 꺼려한다. 좋게 보면 불필요한 관심을 끊어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고 나쁘게 보면 세상일에 눈감는 것이다. 속으로는 정치인을 비난하더라도 막상 투표소에는 가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속말(本音, 혼네)과 겉말(建前, 다테마에)이 다르다는 말이 나온다. 튀지 않으려는 속내는 집단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싶지 않고 “왕따”를 무서워하는 것이다. 모난 돌이 정맞는다는 속담을 체화한 듯하다.

이러한 습성은 일본의 사무라이(侍) 정신줄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사무라이는 15-16세기 전국시대에 지방 영주(大名, 다이묘)를 주군으로 모시고 특권을 누려온 무사계급을 말한다. 주군에게는 절대 복종하지만, 칼을 차고 다니며 평민들을 자의로 지배했다. 권력을 쥐면 모든 것을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다는 듯이 서슴없이 패악질을 저질렀다. 마음대로 부녀자를 겁탈하거나 비위를 건드린 자들을 벨 수 있었다. 절대 복종을 강요받은 백성들은 살아남느냐 항거하다 죽느냐의 선택이 있을 뿐이었다. 일본인들이 그토록 친절한 것은 사무라이의 폭력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약자의 지혜가 습관화된 결과일는지 모른다. 포악한 칼날을 일단 피하고 보자는 궁여지책이다.

소정 선생님은 문민통치의 전통이 있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명치유신 전까지 무인통치를 해왔다고 했다(1980: 383; 1991: 81). 한국의 국조는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마늘과 쑥을 가져왔는데 일본의 국조는 복종심을 유발하는 칼, 활, 거울, 구슬을 가져왔으니,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정복인간征服人間의 차이다(1991: 77-78). 선비의 나라와 사무라이의 나라의 거리이며(2006: 266), 씨름과 스모가 다른 점이다(2011: 226). 전후 온건관료주의를 채택해온 일본이 한국과 중국의 관료제보다 나은 점이 있지만, 전쟁을 일으켰던 죄를 뉘우치고 대안을 모색하기는 커녕 권력자의 온정주의에 순치되고 있다(1996: 31, 654). 말하자면 의미있는 반성과 저항과 수난을 겪지 않은 관료제가 권력남용에 속수무책으로 퇴화하고 있다.

사실과 신화, 역사와 종교

소정 선생님은 또 “일본만 해도 민회의 뿌리가 되는 교회가 드물고 귀신 모신 데가 많은 것이 흠”이라고 하셨다(2008: 454). 아마도 지진과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가 많고, 사무라이의 패악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자들의 자연스러운 선택일는지 모른다(1996: 289). 아직도 일본인 다수가 인간인 왕을 신으로 모시고 있다(2011: 167). 인간과 신이 동전의 양면이다. 종교가 개혁되지 않고 신의 권위에 눌린 백성이 스스로 “카미카제” 특공대로 나설 정도다(2011: 427).

일본이 신화와 종교에 집착한다면 한국은 사실과 역사에 죽고 산다(박헌명 2018). 일본인들은 신화를 만들고 종교처럼 믿는데 익숙해져 있다. 사실과 진실이 어떠한 것인지에 별로 관심이 없다. 사실과 신화가 드렁칡처럼 서로 얽혀있기 때문에 신화로 살아도 자연스러울 뿐더러 불편하지 않다. 반면 한국은 조국후보 검증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사소한 사실관계에도 목숨걸고 달려든다. 그래서 한국이 독도가 역사책에서 어찌 기술되어있는지, 옛날 지도에 어찌 표시되어있는지를 들이밀어도 신화에 심취해 있는 일본인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사회에서 나쁜 권력자가 원하는 신화를 만들면 관료제든 시민들이든 순응하게 된다. 독도든 일제성노예든 무역전쟁이든 말하고 싶은 얘기를 창작한다. 힘을 숭상하는 자들은 권력남용을 따지지 않고 신화를 사실로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심 동의하지 않아도 따돌림당하지 않기 위해 못본 체 한다. 정답은 정해진 것이니 어떻게 신화를 현실로 자연스럽게 이어줄 것인가를 고민할 뿐이다. 질문할 필요없이 그냥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을 할 뿐이다. 알아서 기든, 입닫고 침묵하든, 원칙을 위반한 사연을 깨알처럼 적든 같은 정신줄이다.

견디면서 힘을 키워야 한다

한일 무역갈등으로 양국 모두 피를 보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베 정권의 꼼수와 잔머리가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권력자의 결정에 꿰맞추려는 자기기만과 어거지를 버텨내야 한다. 서로 다른 문법과 논리로 겨루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끝까지 정도를 걸으면서 참고 견뎌 내야 한다.

명분이 우리에게 있는 한 계속 합당한 말을 해야 한다. 보편성과 합리성으로 다투어야 한다. 특히 일본보다 다른 나라를 설득하여 협력을 얻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아베 정권보다는 양식있는 시민사회와 연대해야 한다. 이성과 상식에 비추어 사실을 말하고 용기있게 헛된 신화를 깰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 사무라이의 패악질을 멈추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들을 제압할 수 있는 힘과 자신감이기 때문이다.


끝주

1) 전후 일본이 미국의 도움을 받아 경제를 일으키던 시절 어느 일본기업이 미국 제품을 복제하여 팔다가 기소되었다고 한다. 그 제품에는 “Made in U.S.A.”라고 새겨졌는데, 일본쪽에서는 U.S.A.가 미국이 아니라 “우사”라는 일본회사라고 우기고 재판부에 각종 문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아마도 “우사”의 모든 문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창작하였을 것이다. 십수년 전에 들은 얘기인데, 그 진위는 알 수 없지만 개연성은 충분하다.

참고문헌

인용하기: 박헌명. 2019. 사무라이 관료제의 눈가리고 아웅. <최소주의행정학> 4(8): 1-2.

2019. 09. 10 마지막 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