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대선 정국이다. 여권에서는 이재명, 이낙연, 추미애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야권에서는 검찰총장 자리를 박차고 나온 윤석열과 감사원장을 그만두고 15일 만에 제1야당에 들어간 최재형이 앞서고 있다. 터줏대감인 홍준표와 유승민은 쑥스럽게도 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나는 등락하는 지지율보다도 고위직 공무원이 몸담았던 정부를 비난하고 대권에 나선 것이 신경쓰인다. 법규정이 아니라 직업공무원의 책무와 윤리와 처신을 말하고 싶다.
직업공무원의 올바른 처신이 아니다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은 정치중립을 위해 임기가 보장된 자리다. 윤석열과 최재형씨가 얼마 남지 않은 임기를 채우지 않고 대선출마를 위해 (건강문제 때문이 아니라) 사직서를 던진 것은 무책임하다. 이들이 대선출마를 어느날 갑자기 결정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동안 윤씨와 최씨가 벌여온 정부와 여당 인사들에 대한 조사와 감사의 순수성이 의심받게 되었다. 정당한 직무수행이라기보다 출마용 실적쌓기였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정치중립을 염불念佛처럼 외던 검찰청과 감사원 구성원들은 난감하고 민망할 뿐이다.
더군다나 두 사람의 화두는 아무리 정치인의 수사라 해도 지나치다. 윤씨는 부패하고 무능한 문재인 정권이 권력을 사유화하여 국민을 약탈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상식과 공정과 법치를 내팽개치고 나라의 근간의 무너뜨렸다고 했다. 문정권을 독재와 전제로 낙인찍은 제1야당과 같은 문법이다. 최씨도 문정권이 헌법과 법률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헌법정신을 회복하고 법치주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했다. 문정권이 저지른 일탈과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겠다는 황교안씨의 변과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윤씨와 최씨의 언행은 모순이다. 정말 현정권이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고 국민을 약탈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은 뭐하고 있었단 말인가. 바로 그 정권에서 사정기관을 책임졌던 자들이 이제 와서 남 얘기하듯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이라며 물어뜯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먼저 검찰과 감찰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자신의 무능력과 무책임을 참회해야 할 일 아닌가?
멀쩡한 검찰총장이었으면 불법을 저지른 자라면 국회의원, 장관, 국무총리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잡아들였을 것이다. 헌법정신을 위반한 물증이 명백하다면 국회의 탄핵과는 별개로 즉시 청와대로 들이쳐서 대통령과 참모들을 오랏줄로 묶어왔을 것이다. 헌법이 무너지고 법치주의가 망가지고 있는데, 검찰총장이라는 자가 대통령의 눈치나 보고 장관들과 티격태격한대서야 말이 되는가. 설령 독재자가 검찰의 정당한 법집행을 군홧발로 진압한다 해도 일말의 후회도 없을 것이다. 오직 국민을 바라보는 “바보 칼잡이”였다면 말이다. 전두환의 군사반란에 맞섰던 수도경비사령관 장태환과 특전사령관 정병주처럼 말이다. 하지만 윤씨는 소심한 “낭만 자객”이었다. 최씨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면 강도높은 감찰을 벌여 위법 행위를 낱낱이 파헤쳐야 했다.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로서 김영삼씨와 대립한 이회창씨처럼 강제로 자리에서 쫓겨난다 해도 본연의 직무에 충실했야 했다. 하지만 최씨의 감사원이 시끄럽게 소동을 벌이면서까지 적발한 내용은 용두사미에 가까왔다.
더구나 해먹을 만큼 다 해먹고 나서 정략에 따라 약탈과 비정상을 운운하는 것은 속보이는 짓이다. 궁색한 변명이다. 윤씨와 최씨가 여당의 비난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은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청와대를 압수수색했고, 조국 전장관 식구들을 마음대로 발랐고, 탈원전 정책 감사도 밀어붙였다. 청와대든 국가정보원이든 훼방을 놓지도 않았고 거대 여당은 탄핵으로 몰고 가지도 않았다. 이렇게 물러터진 독재와 전제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박정희나 전두환 정권이었으면 모가지가 수백 개라 한들 살아남지 못했을 일이다. 어디 감히 검찰총장이나 감사원장 따위가... 아마도 빨갱이나 반역자로 몰아 식구들까지 매장시켰을 것이다. 무서운 독재시절이 아님에 기회주의자들이 이리 고개를 쳐드는 것이다.
윤씨와 최씨는 최소주의자가 아니다
윤씨와 최씨의 출마에 감동이 없는 이유가 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검사와 판사로 살아온 사람이다. 이 사회의 기득권을 상징하는 인생을 누린 사람이다. 독재정권에 맞서다 끌려가 매맞고 오욕을 당하거나 서민으로 살면서 차별받고 무시당하고 억울했던 기억이 없는 사람이다. 고문으로 몸서리치던, 저승문턱에서 오금이 저리던 추억이 없는 자들이다. 꽃길을 걸어온 자들은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참고 버틴 최소주의자의 무게를 가늠하지 못한다. 벼랑 끝에 내몰려서 인간으로서 존재마저 부정당하는 마지막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국 식구들을 난도질한 칼솜씨나 절차와 방법을 따져 정책 자체를 비틀어대는 법기술은 최소주의자의 품격과 거리가 멀다. 작심하고 휘두른 그 칼과 법날이 멀리 돌아 자신을 향해 돌아오고 있음을 아는지...
그들에게는 기득권의 초상이 있을 뿐 애초부터 긍휼해야 할 시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적폐로 모는 것이 반헌법이고 불법이고 불공정이고 몰상식이고 비정상이다. 그동안 윤씨가 남긴 설화는 그의 인식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최씨의 서민 행보는 흙묻은 오이를 입에 넣은 이회창씨의 억지스러움이다. 윤씨와 최씨가 현정권을 반헌법 독재정권으로 규정하고 정의와 상식과 정상을 말하는 것이 허무한 까닭이다. 지금껏 호의호식하고서 마치 정권의 핍박을 받은 것처럼 떠벌리고 마음에도 없는 “국민팔이”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여권은 윤씨와 최씨가 임명권자를 배신했다고 비난했지만 틀린 얘기다. 사정기관은 의리가 아니라 불법탈법을 따질 뿐이다. 무작정 권력자를 때려잡으라는 칼도 아니다. 그들은 직무를 유기하고 권한을 남용하여 사리사욕(정치이익)을 채운 탐관오리였을 뿐이다. 주변의 부추김에 홀린 듯 끌려 나와서 엉겁결에 숨겨왔던 욕망을 드러낸 것이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면 미련없이 링에서 내려올 자들이다. 모냥 빠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부류이기 때문이다. 간절한 민심이 아니라 영웅의 이름을 구하는 족속의 숙명이다.
같이 읽기
- 박헌명. 2021.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와 공직자의 자세. <최소주의행정학> 6(3): 1.
- 박헌명. 2019. 조국전쟁: 曺國의 고난과 祖國의 평화 <최소주의행정학> 4(11): 1-2.
- 박헌명. 2019. 윤석열의 선택과 최소주의자가 걷는 길 <최소주의행정학> 4(10): 1.
인용: 박헌명. 2022. 공무원의 윤리와 윤석열·최재형의 처신. <최소주의행정학> 6(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