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Young Lee

월간
 
최소주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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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대전이 발발한 지 2년이 되었다. 조국 교수가 법무부장관으로 지명된 2019년 8월 9일부터 장관으로 임명된 9월 9일을 지나 스스로 “검찰개혁의 불쏘시개”가 되겠다며 사퇴한 10월 14일까지 개혁세력과 기득권세력이 각각 서초동과 광화문을 달궜다. 조국과 윤석열은 양진영의 기싸움을 상징한다. 지금 조씨는 수렁에 빠진 자신과 식구들을 지키는데 사활을 걸고 있고, 조씨를 짓밟고 우뚝 선 윤씨는 정치인으로 변신하여 대통령이 되는 꿈을 꾸고 있다. 조국대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조국의 전쟁과 최소주의

서해맹산誓海盟山으로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며 의욕을 불태운 조씨는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았다. 조폭 두목이 믿었던 행동대장에게 어이없이 난도질을 당한 느낌이랄까? 처자식은 물론이려니와 동생(조권)과 당질(조범동)과 주변 사람들(최강욱, 노환중 등)까지 처참하게 발렸다. “니가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며 계속 쑤셔댔다. 유시민씨가 규정했던 몹쓸 가족인질극이다.

검찰은 100여 군데를 압수수색하고 수사와 재판을 질질 끌면서 권력형 범죄, 가족사기단, 파렴치라는 낙인을 찍었다. 수구 야당과 기자들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조씨 일가를 진창에 몰아놓고 마음껏 조졌다. 한 집안을 풍비박산風飛雹散낸 검찰과 수구세력의 기세에 지인들은 감히 조씨의 편에 서지 못했다. 양심을 거슬러 조씨를 외면하고 자기 목숨을 건사하기에도 바빴다. 조씨 식구들은 억울함과 미안함과 고립감으로 손발이 묶인 채 쏟아지는 주먹질과 발길질을 받아내야 했다. 지인을 원망하고 손가락질하는 자와 지인에게 버림받는 자 모두 인간성이 파괴되는 악랄한 짓이다. 수사가 아니라 인간 학대와 인격 학살이다.

이렇게 역적을 때려잡듯이 해서 기소한 정경심 교수의 혐의는 자녀입시, 사모펀드, 증거인멸에 관련한 15개였다. 조씨 자신은 자녀입시, 웅동학원, 딸장학금 등과 관련한 11개 혐의로 기소되었다. 말이 26개 혐의이지 사실 같은 사건을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고 해서 늘린 숫자다. 정말 눈이 나쁜 황새의 사냥법인가? 검찰은 입시 당사자인 조씨의 자녀는 정작 기소하지 않았다. 비열한 압박이다. 또 “조국펀드”로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중범죄라며 열을 올렸지만, 그 바닥에서는 푼돈인 10억원으로 뭘 어쨋다는지 하품만 나온다. 권력형 범죄라더니 특수부 검사라는 자들이 인턴활동을 몇 시간 했는지, 학회에 참석했는지, 표창장이 위조되었는지를 따지고 앉아 있다. 설사 모든 혐의가 사실이라 해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조국 교수가 사법개혁을 말하지 않았다면 이런 사달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법무부장관으로 지명되지 않았다면 그의 식구들과 주변 사람들은 봉변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끝까지 사표를 내지 않았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인질로 끌려갔을 것이다. 또 조국이 아니어도 누구든 검찰을 건드리겠다는 자는 똑같이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이다. 결국 검찰개혁을 추진한 것 자체가 죄라는 소리다. 사모펀드니 인턴증명서니 표창장은 다 핑계고 구실이다. 이래서 깨어있는 시민들이 서초동과 여의도에 몰려가 촛불을 든 것이다. 누구도 조씨 일가처럼 무자비하게 난도질당해서는 안된다는 공포와 분노다. 국민이 원하는 개혁을 거부하는 검찰에 대한 주권자의 노여움이다.

조씨의 지난 2년은 고난 그 자체였다. 수구 기득권 세력이 휘두르는 폭력을 참고 견디어 왔다. 그렇다고 대책없이 맞고만 있거나 꼼수나 폭력으로 맞서지 않았다. 자신과 식구들에게만 가혹한 검찰과 야당과 언론과 재판관에게 법과 상식과 사실과 논리로 대응해왔다. 외면받고 비난을 받는다 해도 꼭 해야 할 말을 멈추지 않았다. 감정을 누르고 “하나하나 따박따박” 법절차를 진행했다. 최소주의 비폭력이다. 조국의 전쟁이 그만의 전쟁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정치와 검찰주의

윤석열씨는 박근혜 정권에서 국가정보원 댓글사건을 수사하다 좌천되는 수난을 당했지만 검찰총장으로서 조씨 식구들이 누려야 하는 최소한의 인권을 지켜주지 않았다. 최소주의자의 품격이 아니다. 후보자의 자택을 기습奇襲으로 압수수색한 8월 27일, 윤씨는 박상기 장관을 만나 조씨의 낙마를 요구했다고 한다. 장관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임명권자에게 무력시위를 한 셈이다. 누가 뭐래도 자기 멋대로 찔러대는 낭만자객의 만용蠻勇이다. 장관도 대통령도 발 아래에 둔 자의 눈에 조후보자가 보였을 리 만무하다. 시퍼런 서슬은 스스로 참지 못하고 최소한 지켜야 할 선을 넘었다. 본인이 확신했던 사모펀드 혐의는 최근 대법원 판결로 허물어졌다. 윤씨의 칼베기는 성급했고, 난폭했고, 과했고, 허무했다.

반면에 윤씨는 검찰조직과 자기 식구들에게는 끔찍했다. 검찰의 칼날은 균형을 잃었다. “별장 성접대” 동영상을 보고도 두 차례나 김학의를 불기소 처분했던 자들이 김씨의 출국을 막은 절차를 문제삼았다. 한명숙 전총리 사건과 관련한 모해위증교사는 끝끝내 무혐의로 처분했다. 장관의 수사지휘도 위증처벌을 감수하겠다는 증언도 법공작에 묻혔다. 집요한 자기식구 감싸기가 눈물겹다. 윤씨는 자신에 대한 직무정지와 징계에 반발하여 집행정지와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기술이다. 윤씨 배우자와 장모에 관련한 사건은 의혹만 남긴 채 진전되지 못했지만, 추미애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자 6년 전에는 입건조차 되지 않았던 장모가 한달 전 징역 3년형을 받고 법정에서 구속되었다. 윤씨가 어떻게 검찰권력을 활용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윤씨의 대권 도전은 오래된 권력욕의 정점으로 보인다. 그의 “보스기질”은 조국대전에서 확인한 반문수구세력의 지지를 계기로 야망이 되어 불타올랐다. 상관을 멋대로 치받을수록 박수를 받는 재미에 홀닥 빠진 것이다. 이명박근혜 정권이었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갔을 일 아니던가. 무서운 세상이 아님을 깨달은 기회주의자들이 우후죽순으로 삐져나온 것이다. 갈 곳 없는 수구들의 울분과 저주에 편승한 것이다.

윤씨는 법깡패들의 칼잡이로서 꽤 괜찮았는지는 몰라도 정치인으로서는 햇병아리다. 그는 문재인 정권이 국민을 약탈하는 독재라고 비난했다. 검찰총장이었던 자신은 약탈과 독재를 눈뜨고 보고만 있었단 소린가? 얼마 전 한국이 5년 만에 완전한 민주주의로 복귀했다는데, 무슨 뚱단지같은 소리인가? 윤씨는 지지자들에게 공정과 법치를 약속했다. 과연 조국 수사, 김학의 사건, 한총리 사건은 공정하고 정당한 법집행이었을까? 배우자와 장모에게 그토록 자비롭게 처리되었던 사건들은 정말 우연일까?

윤씨는 과격하거나 민심과 동떨어진 발언으로 설화를 자초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세금을 나눠줄거면 안걷어야, 다른 지역이었으면 민란, 주 120시간이라도 일하고, 이한열 앞에서 부마항쟁 등은 참담한 수준이다. 말할 필요가 없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난사하자 지지자들이 나자빠지고 있다. 좌충우돌하며 구세력들과 선문답을 섞더니 압수수색하듯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그의 정치 “지평선”이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이명박근혜를 꿰뚫는 수구기득권이라는 선언이다. 역사인식과 정치감이 가난한 낭만자객의 한계다. 그래서 조국을 바르고 청와대를 들이받은 것일까? 하지만 상처투성이 조국이 뚜벅뚜벅 돌아오고 있다. 윤씨는 다 잊었다지만 이제 어찌할 것인가? Sojeong

같이 읽기

인용하기: 박헌명. 2021. 조국의 최소주의와 윤석열의 검찰주의. <최소주의행정학> 6(8): 2.

2021. 08. 2 마지막 고침